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Nov 03. 2022

아빠로서 아이를 위해 내가 포기한 것들

"아빠라는 존재는 나와 뭐든지 함께 하는 친밀한 사람"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육아로 인해 여유가 없어진다. 그게 경제적인 것 일수도 있고, 시간적인 것 일수도 있다. 먼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27개월 동안에는 그리 큰돈이 들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집을 좀 넓혀 가야 한다는 것, 이런저런 아이 생필품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난감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것이 그나마 돈이 좀 들었던 것 같다. 특히나 장난감은 아이 혼자 잘 노는 게 있으면 육아가 수월해진다.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장난감도 쉽게 질리게 마련인데, 아이가 좋아할 만한 신상 아이템들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면 육아가 굉장히 편해진다. 장난감을 매번 사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이기에, 당근 마켓 등 중고 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보도록 하자. 생각보다 깨끗하고 저렴한 장난감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돈을 모아놔야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때 스스럼없이 사교육을 시켜줄 수가 있다는 생각에 경제적 압박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좀 이르긴 하지만 대학 등록금, 어학연수 비용, 결혼 자금까지도 생각한다면 걱정이 앞선다. 그렇기에 마냥 맞벌이라고 해서 헤프게 돈을 쓸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일단 각자 취미 생활에 들어가는 돈부터 아끼게 된다. 이게 가장 손쉽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항목 중 하나다. 아내는 그나마 집순이라 취미 생활에 큰돈이 들지 않는다. 나는 헬스장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파트 헬스장에서 PT 없이 취미로 운동을 하고, 넷플릭스 구독을 취소했고, 독서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러면 생각보다 생산적인 취미 생활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아이가 없을 때 자주 즐기던 맛집 투어, 핫플레이스 카페, 해외여행은 이제 큰맘 먹고 한 번 할까 말까 한다. 기념일엔 집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달시켜 술 한잔 하고, 여행은 회사에서 지원하는 국내 리조트 위주로 간다. 우린 필수적인 의식주 중에 ''에 집중적으로 비용을 아끼고 있다. 옷은 유행 따라 스타일을 바꾸면 돈이 많이 들기에 기본적인 것들만 계절 별로 갖추도록 했다. 


  사실 이런 경제적인 것을 포기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돈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키즈카페, 동물 체험, 캠핑 등의 활동을 할 때나 소비를 좀 하게 된다. 문제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데 있다. 아무리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까지 하게 되면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그리 많지 않다. 아직 아이가 부모의 손이 필요한 나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 최소 5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시간적으로 포기한 것들이 많다. 우선 예능과 드라마 등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시청하는 것들을 끊었다. TV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웃었던 시절은 추억 속에 묻었다. 지금 TV를 켜는 순간은 아이가 까투리나 핑크퐁 같은 어린이 채널을 보고 싶어 할 때다. 이것도 오래 시청하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해서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만 틀어준다.


  시간적으로도 부부가 단 둘이 얘기하는 시간도 줄었다. 아이가 우리끼리만 얘기하고 있으면, "말하지 마!"라고 소리친다.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옆에서 하고 있으니 답답한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가 빠져있는 대화 자리가 소외감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아이가 있을 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대화를 해야 하고, 그나마 아이가 자는 시간에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우리도 피곤에 절어서 같이 잠들어 버린다. 이 생활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해결책을 찾았다. 핸드폰 카톡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래도 분명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불편하고 한계가 있다. 아이를 위해 맞추는 시간들이 많다 보니 개인의 자유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잠깐의 개인 시간도 아이와 놀아주기 위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멍하니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보니 절대적인 시간 부족을 느낀다.


  

친구들 만남도 줄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전 날 아내에게 친구를 만나고 온다고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되었다. 당일날 급 약속을 잡아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젠 공동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 보니, 서로 눈치를 보며 약속을 잡는다. 일주일에 개인적 약속을 두 번 이상 잡으면, 죽일 놈이 된다. 본인도 일하고 와서 육아하는데, 자꾸만 갑작스레 약속을 잡아버리면 배신감까지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서로 눈치를 보며 미리미리 약속을 잡게 되는데, 결국엔 친구들 모임 횟수가 상당히 줄었다. 각자의 가정생활로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데 여유가 없다 보니 시간 내기도 쉽지가 않다. 말은 안 해도 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해도 불만은 없다. 분기 별로 한 번씩만 봐도 많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이를 위해 개인 시간을 몇 년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아이를 낳기 전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육아에 체력과 시간이 많이 투입된다. 오죽하면 회사 가는 게 쉬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회사 생활과 육아 생활, 그리고 가정생활을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자투리 개인 시간은 체력을 보충하는 데 사용되다 보니, 의욕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여유가 사라진 상태다. 하고 싶은 건 많다.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테니스도 배우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다. 쓸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더 심한 갈망이 생기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이런 것들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절대 바꿀 수 없는 아이와의 유아기 시절부터 쌓은 친밀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빠를 찾고, 원하고,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겐 축복이다. 개인 시간을 포기해서라도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이와 나는 많은 공감과 추억을 만들어 냈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무의식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나와 함께하는 친밀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앞으로의 부녀 관계가 더욱 자연스럽고 끈끈해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걸로 아빠로서 개인 시간을 포기한 보상은 족하다고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