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엔지니어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

"글 쓰는 엔지니어가 되어보자!"

by 똥이애비

나는 공대를 졸업해서 엔지니어로 10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규칙적으로 나만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어땠을까? 나의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 가보도록 하겠다. 고등학교 1학년을 끝내고 나는 이과와 문과 중 하나의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이 왔다. 그 시절 누구나 그렇겠지만, 미래를 그려보며 깊은 고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국어와 역사가 싫었고, 수학은 꽤 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는 단순하게 이과를 선택했다. 그 이후 역사는 내 학창 시절에서 사라졌지만, 국어는 언어영역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끝까지 괴롭혔다. 국어가 싫었던 이유는 재미없는 지문을 자꾸 읽게 하고 발표시키게 했기 때문이고, 역사가 싫었던 이유는 사건을 연도 별로 달달 외워야 하고, 나랑 별 상관도 없는 인물의 위대함을 억지로 존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과를 선택하고 나서는 주로 숫자와 씨름을 했고, 공식을 이해해야 했다. 운 좋게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역시나 공대였다. 공업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등의 과목을 더욱 깊이 있게 배웠고, 문학, 철학, 심리학, 역사, 정치와는 점차 멀어져 갔다.


4년의 학사를 마치고, 엔지니어로 취업을 했다. 분석을 하고 검증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추출하여 분석 보고서, 또는 검증 보고서의 형태의 산출물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우리 팀에서 자주 쓰는 말이 하나 있다.


"엔지니어는 데이터로 말하고, 데이터로 판단한다."


이 말은 즉 데이터만 있으면, 굳이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또는 글을 장황하게 풀어쓰지 않아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다 보니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가 글을 쓰는 일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나마 동향 보고서를 쓸 때나 논문을 쓸 때 정도가 업무로써는 가장 길게 연속적인 글을 쓰는 형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대 엔지니어는 글쓰기를 도외시해도 될까? 뭐,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면 굳이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글쓰기를 한다면 현재 위치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내가 꾸준히 글쓰기를 하면서 공대 엔지니어로서 도움되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다.


1) 교양이 쌓인다

글을 쓰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글 쓸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보통은 내 인생에서 글감을 찾고 있지만, 히 떠오르지 않을 때는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어 내 삶과 매칭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영감을 얻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책 읽기가 있다. 독서를 통해서 글감을 찾기도 하지만, 여러 분야를 탐독하다 보니 교양이 쌓이는 게 느껴진다. 그동안 관심 없었던 철학, 심리학, 경제, 역사 등의 분야도 읽게 되면서, 마치 텅 빈 곳간에 쌀이 쉽게 채워지는 것처럼 내 지식도 자연스럽게 채워지고 있었다. 이 외에도 최신 뉴스 기사들을 관심 있게 보면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따져본다. 그리고 이 생각들을 글감 삼아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한다. 이 또한 교양을 쌓기에 훌륭한 방식이 된다. 특히 회사 동료들 또는 친구들과 만날 때 최근 이슈가 된 사건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나는 이미 생각하고 글을 써보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정리가 된 상태로 말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마치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라는 표정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교양이 쌓여가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뭔가 박학다식해지는 느낌도 들어 뿌듯하기도 하다.


2) 표현력이 쌓인다

글을 처음 쓸 때는 생각도 짧지만, 표현도 짧다. 공대 엔지니어가 아는 용어라고는 업무를 통해 익힌 전문 용어다. 공차가 어떻고, 강성이 어떻고, 해석과 코릴레이션이 어떻고 하는 용어들만 떠오른다. 여기서 공차는 밀크티를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고, 기계 부품을 제작할 때 설계 치수에서 허용되는 오차 범위를 뜻한다. 어쨌든 이런 어들로 글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전에도 말했듯이 다양한 독서가 글감도 떠오르게 해 주지만, 표현력도 향상시켜준다. 특히나 아주 잘 써진 소설책은 엔지니어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주변을 묘사하는 기교가 매우 탁월하다. 엔지니어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있다. 바로 경쟁사 제품 벤치마킹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를 때는 책을 읽고 비슷하게 따라 쓰거나, 독후감을 써보는 것도 표현력 향상에 좋다. 좋은 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책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거나, 하이라이트가 많이 쳐진 책에 대해서는 독후감을 써서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책의 주요 문구들을 써보며 낱낱이 해석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 표현력이 쌓이고, 대중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용어들이 많아진다. 그럼 더욱 글쓰기가 수월해지고, 글에서 내 생각이 뚜렷하게 표현되고 있음이 느진다.


3) 생각이 확장된다

공대 엔지니어가 글을 쓸 경우에 점차적으로 생각이 확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좁은 전문 영역에서만 장기간 활동하다가, 글을 쓰면서 그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지만, 글을 써보면 책을 읽고 생각만 하던 것이 내 머릿속에서 더욱 확장되고 깊어진다. 즉 사유의 구체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다는 건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마주한 세상과 일을 바라보게 해 준다. 내 주변에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생각으로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글을 쓰기 위해 책도 읽고 뉴스도 보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글도 많이 읽는다. 커뮤니티 인기글을 모아 읽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러난다. 그 글들이 내 글쓰기 주제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왜 인기글이 되는 건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저 어그로인지, 솔직한 내용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지, 정성 글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지를 판단해보고 내 글에 적용시켜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확장된다면,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 접근할 수 있고, 사람을 만날 때도 좀 더 포용적으로 대할 수 있다.


공대 엔지니어에게 글쓰기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일을 하면서 필요 없는 귀찮은 행위일 수도 있지만, 쓰는 엔지니어는 앞에서 얘기했듯 확실한 강점이 된다. 매번 숫자와 씨름하는 것도 지겨우니, 내 일에 인문학적인 감성을 덧입혀보도록 하자. 내 경험을 녹이기 위해 공대 엔지니어로만 한정 지었지만, 비단 엔지니어에 대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좀 더 글 쓰는 삶에 가까워질수록 앞서 말한 혜택들은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특히나 내 일이 글을 읽고 쓰는 행위와는 거리감이 있을수록 더욱 확실한 이점이 되고, 그것이 내가 속한 업계에서 나만의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글 쓰는 엔지니어의 삶을 한 번쯤 꿈꿔봐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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