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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한 2박 3일 동계 훈련

"육아의 무한궤도"

by 똥이애비

제목이 거창했지만, 회사에 이틀 연차를 내고 우리 세 가족이 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평창이다. 아내가 거금을 들여 2박 3일 패키지 상품을 구매했다. 2018년에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있었는데, 그때 경기에 출전하던 선수들의 투지가 이제야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눈썰매장과 온수 풀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29개월 아이와 함께 갈 생각을 하니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심지어 아내는 피로회복제까지 구비했다. 다행인 건 뷔페를 3번 이용할 수 있어서 아이의 식사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눈썰매나 풀장이 기대되는 건 아니었고, 오로지 저녁 뷔페에서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와인과 맥주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내가 맘 카페에서 이 패키지 상품을 알아보며, 나를 꼬신 것도 아이와의 추억 그리고 무제한 술이었다. 나는 결코 안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일요일 오전에 트니트니 수업이 있었고, 끝나고 바로 평창으로 출발하려는 계획이었다. 세 번째 수강하는 12월 첫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의 힘을 빌려서 아이의 체력을 미리 좀 빼 놀려는 수작이었다. 가을 동안 등록을 안 했다가 오랜만에 가니, 아이가 뛰어놀면서 땀을 쫙 빼고는 엄청나게 만족해했다. 계획이 성공하는 듯싶었지만 차를 타고 2시간가량 이동하는 와중에 아이는 깊게 잠들었고, 다시 체력이 100퍼센트 충전되었다.


다시 살아난 아이와 함께 흰 눈으로 덮인 평창 리조트에 도착했다. 우리는 풍경을 즐길 겨를도 없이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아이가 겁이 많고 평소 놀이터에서 혼자 미끄럼틀도 못 타기에 당연히 눈썰매도 아빠와 함께 타야 했다. 옷도 두껍고 땅도 미끄러우니까 아이의 예민함과 짜증이 늘어갔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 계속 안아달라고 보챘다. 아이를 안고 언덕 위로 올라가서 함께 눈썰매 타고 내려오는 과정을 대, 여섯 번 정도 반복했다. 오랜만에 눈썰매를 타니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는커녕, 군대 시절에 동계 훈련 나온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우리 딸은 효녀라 놀 때는 특별히 아빠만 찾아서 아내와 교대하기도 어려웠다.


첫날 훈련을 마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뷔페로 향했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고된 훈련으로 인해 무슨 음식이든 다 맛있었다. 게다가 맥주와 와인을 부담 없이 실컷 마시다 보니 어느새 피로감이 싹 가셨다. 먹는 와중에 힙합 공연도 하고 있어서, 아이를 무대 앞쪽으로 보내 춤을 출 수 있도록 했다. 아이가 힙합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모습을 맥주를 홀짝이며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렇게 첫날 훈련의 마무리는 꽤 좋았다.


둘째 날 훈련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오전엔 어제와 동일하게 눈썰매 훈련이 있고, 오후엔 온수 풀장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어제 눈썰매를 좀 타서인지 세, 네 번만 왕복하고 아이는 모래놀이처럼 눈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오래 머물렀다. 다행히 옆에 앉아 좀 쉴 수 있었다. 점심을 대강 먹고 온수 풀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신나서 물장구를 쳐댔다. 이번엔 아이를 안고 파도풀과 유수풀을 반복하여 왔다 갔다 하는 훈련이다. 아이를 안고 물살을 가르며 다니다 보니 점차 체력이 떨어졌지만, 아이가 너무나 즐거워해서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나마 부력으로 인해 아이가 가벼워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 훈련도 무사히 마치고, 또다시 저녁 뷔페로 향했다. 어제보다 고된 훈련이었기에 이번엔 와인 위주로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너에서 원분이 잔씩 따라주셨는데, 너무 자주 가서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양갈비와 소고기 스테이크는 드라이한 레드와인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렇게 음미하려는 찰나에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이가 아니다. 이곳저곳 구경시켜 달라고 해서 먹다 말고 일어섰다. 아이를 안고 뷔페를 돌며 음식 하나하나마다 "이거 뭐야?"라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AI처럼 무의식적으로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건 고기, 저건 연어, 저건 초밥.

우리 부부는 이런 식으로 교대하면서 밥을 먹어야 했다. 막판엔 서로 지쳐서 결국 비장의 카드인 '엄마 까투리' 만화를 틀어줬다. 아이가 만화에 집중하고 있을 때 빠르게 음식과 술을 입 속으로 넣었다.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을 때쯤 아이가 말했다.


"아빠, 광고!"


유튜브 영상에서 중간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그만 보고 우리 숙소 가서 또 놀자"

"네, 좋아요!"


아이는 신나 했지만, 유모차를 태우고 일부러 먼 길로 돌아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실내로 통해 있어서 춥지는 않았다. 숙소에 다 와갔을 때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유모차 안을 들여다봤다. 아이가 목이 꺾인 채로 잠들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성공이야!"


9시도 안돼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다. 2박 3일의 동계 훈련으로 얻어낸 쾌거였다. 우리는 그 저녁을 즐기려고 마음먹었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른 시간에 잠들어버렸다.


"아빠, 일어나!"


아침 7시였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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