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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Dec 04. 2022

술 취한 아빠가 자는 아이를 깨우는 이유

"술 취하면 조용히 거실서 잠이나 자야지..."

  회식이 있었다. 새로운 팀으로 옮기는 날을 앞두고 미리 그 팀의 팀장 그리고 팀원들과 술을 한잔 마신 것이다. 내년에 서로 으쌰 으쌰 해보자는 다짐과 함께 다 같이 목을 꺾으며 술을 목구멍으로 계속 넘겨댔다. 2차, 3차까지 넘어가니 술이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억이 다 나는 것을 보니 대략 소주로 2병 반 정도 마신 듯했다. 술잔을 마실 때마다 한잔씩 세면서 먹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술을 15년 정도 꾸준히 마시다 보면, 다음날 내 컨디션에 따라 전날 마신 술의 양을 예상해볼 수 있다. 소주 2병 반 정도면 꽤 과음한 편이고, 속이 울렁거리거나 기억이 끊기지는 않지만 숙취가 다음날 오후까지 가는 상태가 된다.


  3차를 끝내고 비틀거리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므로 나는 버스가 끊기기 전에 서둘렀다. 날씨는 또 갑자기 추워져서 애써 비싼 돈 주고 끌어올린 취기를 점차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니 은은한 온기가 나를 감쌌다. 버스 안에서 얼마나 졸았을까 집에 도착하기 한 정거정 전에 기가 막히게 눈이 떠졌다. 정말 인간의 귀소본능은 뛰어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린 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다시금 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간 시간이 대략 11시 반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주 2병 반 정도로 내 기준에선 꽤 과하게 마신 상태임에도 추운 날씨 버스에서 살짝 잠들었던 게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적당히 기분 좋은 취기로 남겨 놓았다. 한쪽 주방 불만 켜진 채 거실 불은 꺼져있어서 그대로 거실 소파에 누워 잠들기 좋은 분위기였다. 일부러 아내가  안방에 들어오지 말고 거실에서 자라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술 취해 눈에 뵈는 게 없는 대한민국 가장 아닌가. 안방에 잠들어 있는 아내와 딸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기어코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어두컴컴한 와중에 핸드폰 불빛에 비친 아내의 뾰족한 눈빛을 보았다. 살짝 주춤했지만 이 정도로 굴한다면 애초에 문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안 잤어...?"


아내가 대답이 없다. 하지만 난 그 의미를 알고 있다. 예전에도 술 취하고 안방으로 침입해 아이를 깨운 적이 좀 있어서 술 먹고 집에 오면 그냥 조용히 거실에서 잠이나 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니므로, 나는 오늘도 역시나 눈길을 돌려 아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에게로 향했다. 정말 아이가 자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나를 닮았지만 참 예쁘다는 생각도 했다. 아마도 술 취하면 누군가가 더 예뻐 보이거나 멋있어 보였던 기억들이 있을 텐데, 술에는 그런 마법 같은 효과도 있다. 술 취한 상태에서 아이를 보고 싶은 이유도 이와 같다. 평소보다 술 취했을 때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비치기에, 계속 보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 회오리 친다. 게다가 얌전하게 잠까지 자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이가 없다. 나는 이런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는 아이에게 연거푸 뽀뽀 세례를 했다. 아이는 얼마나 곤히 자는지 기척도 하지 않았다. 살짝 기척이라도 했으면 아이가 더 사랑스러웠겠다는 이상한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술이 취하긴 취했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아내가 말을 꺼냈다.


"술 냄새나니까, 빨리 거실로 가서 잠이나 자!"


도저히 아내가 내 이런 모습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내는 퇴근하고 아이와 저녁 시간을 보낸 후에 겨우 잠을 재웠는데,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아이를 깨우려고 하는 내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싫었을 테다. 나는 아무리 술 취한 상태라도 눈치까지 말아먹진 않았기에, 군말 없이 좀 더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싶은 아쉬운 눈길을 거실로 돌렸다. 그러고는 술 취한 상태로 잠을 청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사춘기가 오면 아이가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 텐데,  술의 힘을 빌어 더욱 예쁘게 보이는 아이를 최대한 어릴 때라도 많이 봐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하면서 아주 잠시 눈을 감으니,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이었다. 잠을 잔 듯 만듯한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고, 헤롱 거리며 문 밖을 나섰다. 새벽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술이 더욱 깨고 나니 '다음부턴 그냥 술 취하면 조용히 거실에서 잠이나 자야겠다'라는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또 한 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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