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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Sep 13. 2022

직장에서 대학교 전공이 의미 없는 이유

"비전공 신입사원의 분투기"

  보통 대학생들이 하는 큰 착각 중 하나가 내가 4년간 배운 전공으로만 취업해야만 하는 줄 안다는 것이다. 나도 취준생 시절 꼭 내가 배운 전공만 살려서 관련 회사만 골라 지원했었다. 당연히 확률적으로 관련 전공자가 뽑힐 확률이 높지만, 비전공자도 충분히 취업 시장에 도전할 만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물론 석사 또는 박사과정에 있는 분들은 얘기가 다르다. 난 학사로 졸업하였고, 더 깊게 공부하기보다는 현업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성장하고 싶었다. 또한 경제적인 상황으로 석, 박사로 진학하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어쨌든 난 학사로 전공을 살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당당히 입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입사하고 나서 시작되었다. 모든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군대에서 자대 배치받듯 부서 배치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내 전공으로 지원하여 합격하였기에 내 전공 관련된 부서로 배치를 받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이 회사는 내 전공이 관련된 부서가 딱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과 담당자는 그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설계팀으로 배치했다. 알고 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그 팀의 인력 충원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멘붕이었다. 나는 설계 프로그램도 전혀 다룰 줄 몰랐고, 내 인생에 설계자로서의 길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배치받은 팀은 회사에서 악명 높은 팀이었다. 퇴사자가 한 달 걸러 한 달씩 나오고 있기에 인사과에서 급하게 신입을 뽑아 배치해놓은 것이다. 이때부터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굉장히 컸다. 꾸역꾸역 1년 정도 버티며 일을 해냈다.


  도저히 못해먹겠다. 나는 1년 만에 그 부서를 박차고 나왔다. 굉장히 많은 면담과 사건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신입 때 지원한 전공 관련 팀으로 전배가 되었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고, 나와 똑같은 과정으로 다른 팀에 배치된 동기는 결국 퇴사하고 대학원으로 피신하였다. 어쨌든 나는 드디어 입사 2년 차에 내가 원하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 팀에서도 내가 맡은 세부 직무는 전혀 내 전공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연속으로 오는 것일까. 단지 내가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써먹어보고 싶은 것뿐인데, 이것 조차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게 사회생활 속에서 난 그저 힘없는 부속품일 뿐이었다. 


  '그래, 어차피 퇴사까지 질러가며 겨우 원하는 팀으로 전배 되었으니, 이 정도로 일단 만족하고 일을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무로 옮겨달라고 얘기해보자.' 그렇게 9년이 흘렀고, 난 전공을 살린 업무를 전혀 해본 적이 없다. 내 4년의 대학 전공 지식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9년이란 세월 동안 나는 새롭게 맡은 직무 관련된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해당 업무와 관련된 사내 교육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도대체 9년이란 시간 동안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회사가 변한 건 없다. 내 마인드가 달라졌을 뿐이다. 첫 부서에선 내 전공 지식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만 아쉬워하고, 새롭게 맡게 된 업무를 배운다는 것에 수동적이었다. 내 전공이 아니니까 남들보다 업무가 뒤쳐지는 건 당연하다는 장벽이 내 성장을 가로막고 있었고, 난 그렇게 일 못하는 신입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팀을 옮기고서는 전공 지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대학교 4년간 배운 전공 이론은 이론일 뿐이고, 현업에서의 실전은 어차피 모든 신입이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하였다. 그래도 이론이 부족한 것은 맞으니, 그 이론 지식을 채우기 위해 퇴근 후 관련 자격증 공부를 별도로 했다.


  전 부서에서 일 못하는 신입의 이미지를 현 부서에서 탈피해야 하는 문제도 떠안고 있었다. 현 부서에서 나를 받은 사수도 탐탁지 않아했다. 자꾸 자기 대학 전공만 따지고 드는 신입 같지도 않은 2년 차 애송이와 팀 사정 상 어쩔 수 없이 같이 일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내 사수는 내가 전에 있던 부서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나에 대한 파악을 끝내 놓은 상태였고, 전 부서 사람들은 나에 대해 좋게 얘기 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수뿐만 아니라 현 부서 팀원들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선입견과도 싸워야 했다.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며, 신뢰를 구축했다. 사수가 가르치는 일들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수첩에 상세히 적었고, 시키는 일도 절대 까먹지 않고 바로바로 해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신뢰를 얻기 가장 쉬운 방법은 약속한 일정 내에 내가 맡은 업무를 완료하고, 그 내용이 도움 될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회식자리도 빼놓지 않았고 2차든 3차든 다 따라다녔다. 물론 팀 행사도 내가 먼저 앞장서서 주도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팀원들은 이런 행사를 상당히 귀찮아해서 누가 대신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 정도 치열하게 일하니, 사수와 팀원들을 나를 점차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수도 믿음이 생겼는지 이때부터 업무를 나누어 서로 동등한 관계로 책임을 나누기로 했다. 새로운 전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과 땅바닥에 떨어진 팀원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결국 나의 성장을 이끌어내 주었다. 지금 현 부서에서는 9년 차가 되었고 새로운 전공이 결국 나의 전문 영역이 되었. 이제는 알았다. 내가 그렇게 신입사원 때 외쳤던 '대학 전공 지식'은 그저 4년간 공들인 돈과 시간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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