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Jan 26. 2023

퇴사를 결심한 이들의 모습

"설득하기엔 이미 늦었으니, 차라리 축복해 주길"

  회사를 십여 년 간 다니면서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겨우 그거밖에 안돼?'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 많을 거라 예상해 본다. 진지하게 턱 밑까지 가본 경험이 그렇고, 매번 퇴사는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있는 것이라는 걸 모든 직장인들은 알고 있을 테다. 퇴사하고 싶은 이유도 가지 각색이다. 직장 선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규칙적으로 틀에 갇힌 생활이 싫어서, 일이 너무 고돼서 등등 너무나 많은 사유가 존재한다. 나의 첫 퇴사 생각은 일이 너무 안 맞고 직장 선배들의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두 번째 퇴사 생각은 직장 생활 10년 차가 되었을 때 온 매너리즘과 성장이 정체된 것에서 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은 결국 퇴사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하나, 둘 씩 퇴사를 하는 이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 나도 정말 퇴사 직전까지도 가봤기 때문에 이들의 거침없는 용기와 미리 새로운 길을 찾아낸 준비성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러다 문득 내 경험에 빗대어 퇴사를 앞두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았다. 퇴사를 통보하기 전과 후로 나누어 이들의 행동과 태도에는 변화가 있었다.


  퇴사 통보 전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개인적으로 상당한 고민을 해왔을 테다. 알게 모르게 회사나 상사의 불합리함을 주변에 알리기도 하고, 블라인드 앱에 익명으로 욕도 많이 썼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회사에 불만이 상당히 쌓였지만, 개선 가능하다면 계속 다닐 의향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퇴사를 마음먹게 하는 원인이 사라지지 않으면, 결국 이들은 입을 닫는다. 즉, 참고 참아도 변하는 게 없으니 결국 퇴사하기로 결심을 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퇴사를 마음먹은 사람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진다. 스트레스와 화로 굳어진 얼굴이 점차 풀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 회사에서 기대하는 바가 없고 곧 떠날 것이기에 누가 뭐라 하든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직을 하든, 사업을 하든, 대학원에 가든 뭔가를 마련해 놓고 한 퇴사 결심은 훨씬 더 평온해 보인다. 일을 할 때 말만 하면 성질만 내던 사람이 업무 요청을 해도 부처님처럼 해탈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잘 대응해 준다면, 이는 곧 퇴사를 앞두고 있을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퇴사 결심을 감지해 낼 수 있는 행동 변화가 있다. 먼저 본인의 친한 사람들에 밥이나 술을 사는 일이 잦아진다. 이제 곧 떠날 사람이니 관계를 돈독히 해서 나중에라도 연락할 수 있는 편안한 사이로 만들어 놓기 위함이다. 갑자기 커피를 자주 마시자고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거나 고민이 있는 것이니 얘기를 잘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다 퇴사 얘기를 꺼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자신의 짐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파일부터 개인적인 것들을 하나씩 삭제하기도 하고, 자리에 놓인 개인적인 짐들도 하나씩 챙겨서 집에 가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더 이상 이 회사에 내 개인 생활을 밝힐 것들을 놓아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야근할 때 봤던 가족사진들, 업무에 도움 되고자 사비로 샀던 책들, 작은 힐링을 위한 화분 또는 장식품들이 점차 자리에서 사라진다면, 이들은 퇴사를 결심한 상태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퇴사를 팀장 또는 인사과에 통보하고 나서는 이들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된다. 통보 전에는 약간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였다면, 이젠 누구나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당당하게 '퇴사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은 평온함을 넘어 한결 후련해져서 웃음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들은 보통 자리에 잘 없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 놓고 떠나기 위해서 영업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사기도 하고 얻어먹기도 하면서 서로 관계의 영속성을 다짐한다. 내가 다른 곳에 가서도 이전 회사 사람들을 잘 알아두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직장 동료들이 걱정을 해주기도 하고 부러움을 보이므로, 본인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와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이젠 상세하게 말할 수 있다. 사내에 소문이 빨리 돌기 때문에 아직 말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연락올 때도 꽤 많다. 일을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도 해야 하므로, 퇴사 후 정말 연락할 것 같은 사람들만 좀 가려서 약속을 잡게 된다. 어느 정도 회사에서의 업무와 관계가 정리가 좀 되었으면, 이제 퇴사자의 걱정은 이 회사를 나간 후로 초점이 잡힌다. 그래서 당분간 회사에 몸이 있으면서도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인수인계와 파일 정리를 마친 후에는 다른 곳에서 하게 될 일을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새롭게 도전하는 길이 또 다른 실패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에 욱 몰입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 원인에 대해 복수를 할지 또는 용서를 할지를 정해야 한다. 아무래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선 복수보다 용서를 택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할 테다. 이제 떠나는 마당에 복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퇴사를 앞둔 이들의 모습은 이처럼 징조가 있다. 가장 좋은 건 누군가 불만을 얘기할 때 회사에서 적절하게 개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마땅한 개선이 없더라도 들어주는 척만 했더라면, 퇴사를 결심하는 이들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황금 기회를 놓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될 때는 이미 되돌리기엔 늦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결심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철저히 준비해서 내린 결정이므로 이들의 가는 길을 축복해 주는 것만이 남았을 뿐이다. 회사에서 누군가 회사 불만에 대한 입을 닫고 평온한 표정으로 주변 관계나 짐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 게 보인다면, 이제 그들이 그들의 결심을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겪은 최악의 상사 특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