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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20. 2023

아내가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

"인생이 쓴 것인가, 소주가 쓴 것인가"

  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당시에도 아내는 공무원이었다. 내가 28살 겨울쯤에 아내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으니,             한 살 어린 아내는 27살에도 공무원이었고 일 한지 2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애 초기에는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얘기를 나누느라 새벽이 넘어가기 일쑤였고 아내를 바래다준 뒤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연애 초기의 어느 날 대화 도중에 나는 아내에게 문득 공무원이란 직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물본 적이 있다.


"..., 그런데 어쩌다가 공무원 준비를 한 거야?"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질문에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꽤 많이 이런 질문들은 받아온 사람처럼 대답했다.


"나는 결혼한 뒤에도 여자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직업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난 결혼하고 애를 낳아도 계속 일을 할 거니까."


아내의 이런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름 자기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는 듯했고, 나중에 정말 이 여자와 결혼하게 되어도 맞벌이는 기본 옵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연애 초기니까 혼자 이 정도의 김칫국은 항상 냄비 째 들이켜고 있었다. 아내도 물론 나에게 왜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봤지만, 별 다른 얘기를 해줄 건 없었다. 그저 대학을 졸업하고 과에 맡는 업종 중에 나를 선택해 준 곳 중 하나를 골라 다니고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아내의 직업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보기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아내에게 더 깊은 호기심이 샘솟았다. 그래서 떠오르는 질문들을 연거푸 퍼부어댔다.


"그럼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여자라고 쳐도 엄청 일찍 들어간 것 같은데?"


아내는 또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공무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난 과생활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에 더 매진했어. 졸업하고도 일 년 정도 수험생활을 한 뒤에야 겨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지. 그날은 정말 엄마랑 부등 껴안고 울었어."


수능시험조차 보지 않 나는 인생에 이런 큰 시험을 두 번이나 겪은 아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인생을 계획 없이 살아왔나 반성도 좀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들로 인해 아내가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이유와 준비한 과정들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연애 초기에 아내의 역사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린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 만나서 서로 술 한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인생을 알아가고 있었다. 일차로는 든든하게 주꾸미를 먹고 이차로 온 곳은 처음 와보는 포차였다. 일차부터 술을 좀 마신 우리는 이차가 시작되는 시점에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포차에서 아무렇게나 안주를 시킨 후 우리는 원탁에 마주 앉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중 술이 꽤 들어가니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분명 기분 좋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울어서 무슨 실수를 했나 잠시 내 말을 되짚어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내의 주사는 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내가 뭔 실수라도 한 거야?"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니, 저번에 내가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이유 말이야... 말하지 못했던 게 있어."


나는 내가 실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잠시 안도했다. 그러고 나서 아내를 다독이며 말했다.


"뭔데? 나한테 말하기 힘든 거야...?"


아내는 재차 눈물을 닦고는 작심한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아빠가 없어... 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랑 아빠가 이혼했는데, 아빠가 너무 싫어서 아예 연을 끊고 살고 있거든..."


나도 부모님이 싸웠을 때 차라리 부모님이 이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어서 이혼한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연을 끊고 지낸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쉽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내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으니까 아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빠 없이 지내는 동안에 엄마가 나 키우느라고 식당 일이나 허드렛일로 고생하시는 걸 옆에서 많이 봤어. 아빠만 믿고 집에서 살림만 하시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 일터로 나가는 엄마가 불쌍했어. 난 그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하더라도 남편한테만 의지하는 아내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공무원이 되기로 했던 거야... 그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훌쩍이는 아내를 위로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용기 내서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어머니도 그렇고 너도 고생 참 많았겠다. 그래도 당당하게 공무원이 되어서 어릴 때 바람을 이뤘으니까... 이젠 우울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아내는 이제야 살짝 민망함이 올라왔는지, 배시시 웃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 이해해 줘서... 긍정적으로 말해줄 줄 알았어. 이제야 좀 힘이 난다."


나는 내 말이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잔을 높이 들고 아내와 짠을 하며, 남은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한결 더 깊어진 우리의 관계가 조금은 더 성숙해진 것 같아, 한동안 이어졌던 아내의 얘기들과 더불어 소주 맛 또한 그리 쓰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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