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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현실이니까...

"말하지 못한 비밀"

by 똥이애비

아내와 만난 지 6개월이 넘어가는 어느 날에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연애가 성숙해졌고, 서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세세하게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29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 사귀자고 고백했던 날부터 결혼을 생각한 진지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고, 아내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면서 나를 만나고 있는 듯했다. 아내가 먼저 본인의 부모님이 이혼했던 가정사를 얘기했을 때 나는 아내를 위로해 주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 가정사의 비밀까지는 말하지 못했었다. 사실 이 비밀을 말해버리는 순간 아내가 나를 떠날까 봐, 그리고 행복이 깨져버릴까 봐 두려워서 더욱 말할 수 없었다.


6개월 정도 만나다 보면 데이트 코스는 의 뻔해진다. 큰돈 내고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맛집, 카페, 영화, 술집 정도로 추려졌다. 그럼에도 우리들만의 단골이 생기고 추억이 특정한 공간에서 쌓여 간다는 게 나름 나쁘지만은 않다고 여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내의 집 근처 작은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깨끗하고 사장님은 친절했다. 테이블도 많지 않고 사람도 얼마 없어서 우리는 방해받지 않고 이 카페에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날에는 특별한 각오를 좀 더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이따금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말하지 못한 가정사가 발목을 잡고 있는 듯했다. 사실 내 가정사의 비밀은 단순하다. 바로 '가난'이었다.


IMF로 한 순간에 집이 몰락하고 빚더미에 앉았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버지가 파산 신청을 하던 즈음에 난 중, 고등학교를 죄책감으로 다녔고 대학교는 살기 위해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고 다녔고, 대학교는 약간의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로 메꿨다. 다행히 대학교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보탤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월급이 족족 빠져나갔고, 다른 동기들에 비해 모은 돈이 많지 않았다. 난 내 욕심으로 지금의 아내를 붙잡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젠 욕심을 내려놓고 현실을 말할 때가 된 듯싶었다.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나고 있으니, 내 가난을 알고 그다음 관계의 깊이는 아내가 선택할 몫라 여겼다.



난 카페에서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큰 각오가 필요했지만 난 내색하지 않려 노력했다.


"사실 나 어렸을 때 엄청 힘들게 컸어. 아빠가 IMF 때 사업을 벌이다가 무너지셨거든..."


아내는 그동안 나의 천진난만한 모습만을 보다가 갑작스레 가정사를 말하고 있는 나를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그래? 몰랐네... 어쩐지 부모님 얘기는 잘 안 해준 것 같았어."


그때부터 난 아빠, 엄마가 시골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서울로 상경한 얘기들, 아빠가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던 얘기들, 엄마가 친척 아시는 분의 공장에서 일했고 그곳이 내 놀이터였던 얘기들, IMF가 우리 집을 어떻게 할퀴었는지 그리고 그 깊이가 얼마나 갚었는지에 대한 얘기들, 나의 학창 시절에 가난과 싸웠던 얘기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억나는 대로 아내에게 모두 다 말해주었다. 아내는 조용히 듣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 울음이 내가 불쌍해서인지, 지금껏 결혼을 생각하고 날 만나온 아내가 스스로 불쌍해서인지 난 알지 못했다. 아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나도 나지만... 오빠도 정말 힘들었겠다... 그런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내 가정사에 대한 얘기를 모두 끝냈을 때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던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우리가 처한 상황과 부모님들이 처하신 상황 그리고 모아놓은 돈 모두가 고려되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결혼을 생각한다는 게 철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 내 가정사를 얘기한 이유는 너와 좀 더 명확한 미래를 그리고 싶어서야.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다 싶으면 나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지금 나 열심히 벌고 있으니까 우리가 빨리 함께 모은다면 남들만큼은 따라갈 수 있지 많을까?"


아내는 훌쩍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고,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이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계속 만나보자... 함께 고민하고 얘기하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올 수 있을 거야."


나는 아내의 결정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아내의 손을 꽉 잡고 고맙다고, 함께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그날 맞잡은 손은 1년 뒤 결혼식에서도 여전히 잡고 있었고, 우린 함께 누구보다 잘 살아보기로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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