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아이를 집에서 돌봐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그중 하루는 아빠인 내가 연차를 써서 아이와 놀아줄 차례였다. 전날에 네 살 난 딸과 함께 하루종일 뭐 하고 보낼까 궁리하고 있는데, 아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차 타고 좀만 나가면 프리미엄 뽀로로 테마파크 있다는데 거기 가서 하루종일 놀다 오는 건 어때?"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도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테마파크에 프리미엄까지 붙어있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서 좀 둘러보니, 뽀로로 캐릭터로 꾸며진 대형 실내 키즈카페였다. 여러 가지 이벤트와 공연도 있었고, 다양한 놀이 체험과 수업도 있었다. 물론 프리미엄이 붙은 만큼 가격도 상당히 셌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하루종일 아이와 밖에서 혼자 놀아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가며 혼자서 꽤 많은 고민을 했다.
'지난번 서울랜드에서 아내랑 같이 가서 하루종일 아이와 놀아줄 때도 체력이 정말 바닥났는데, 나 혼자 잘할 수 있을까? 아이가 좀 더 컸고 실내니까 좀 나을까?'
'아이가 거기서 신나게만 놀아주면 집에 올 때 확실하게 뻗을 텐데, 내가 함께 밀도 있게 놀아주면 집에서는 푹 쉴 수 있을까?'
'가격이 가격인 만큼 거기서 하는 공연이랑 프로그램을 최대한 즐겨야 하는데, 아이가 일찍 갈 수 있게 도와줄까?'
'괜히 나 혼자 아이 노는 거 종일 맞춰주다가 몸살 나는 거 아냐?'
고민 끝에 결국 난 예약을 해서 가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에겐 미리 다음날 아빠랑 신나게 놀 거니까 일찍 자자고 말해 놓았다. 하지만 내 딸은 그렇다고 일찍 잘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실컷 놀다가 잠들었다. 나도 당일에 쓸 체력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당일 아침 아내는 출근을 했고, 난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숨죽이며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푹 자고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났다. 아침을 오트밀과 계란으로 간단히 먹이고 나서 아내가 미리 싸준 짐가방을 들고 아이와 함께 목적지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뒷좌석에 앉은 아이는 신이 나는지 노래를 흥얼거렸다. 말도 못 했던 아이가 혼자 노래까지 부르는 것을 보고 내심 뿌듯해했었다.그렇게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높은 건물에 '프리미엄 뽀로로 테마파크 입점'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도착한 시간이 10시 반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이미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아마도 방학이고 개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부모들이 큰맘 먹고 온 것일 터였다.
입장하자마자 뽀로로 밴드 공연이 있다고 해서 공연장으로 아이와 함께 뛰어갔다. 아이는 지나쳐가는 놀이 기구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나는 공연부터 보고 차례로 타자고 아이를 달랬다. 늦게 도착하여 구석 자리에 앉았고, 좌석은 어느새 꽉 차 있어서 중간중간 계단에 앉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뽀로로 밴드 공연은 인형 탈을 쓴 뽀로로와 크롱이 밴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었지만, 아이는 마치 연예인을 보듯이 초집중하며 즐겼다. 심지어는 아는 음악이 나왔을 때 내 무릎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이 모습을 보니 전날 올까 말까 고민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위해 당연히 와야 했던 것인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체력이 고갈될까 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서 간 곳은 대형 트램펄린이 대형 스크린과 함께 있었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뽀로로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워낙 많아서 부딪칠까 봐 노심초사하며 열심히 뛰는 아이를 계속 눈으로 좇았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뛰기만 하는데 괜찮을까 싶어 잠깐 쉬라고 불러봐도 무아지경인 아이는 신들린 것처럼 계속 뛰어댔다. ABC초콜릿을 손에 들고 흔들어서 아이에게 보여주니까 그때서야 나에게 달려왔다. 아이가 초콜릿을 먹으며 멈춰있어서 나는 이때다 싶어 말했다.
"좀 있으면 저기 무대에서 뽀로로가 퍼레이드 한대! 우리 같이 뽀로로 보러 갈까?"
아이는 내 말을 듣고는 드디어 관심을 보였다. 거친 숨을 내쉬던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무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무대에서도 스크린에 뽀로로 음악과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고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으니, 아이도 질세라 내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 무대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말 아이의 체력은 끝이 없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직원이 나와 안내를 하며 아이들을 무대 아래로 내려가도록 한 뒤, 뽀로로와 루피 탈을 쓴 사람이 나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뽀로로와 루피는 정해진 코스로 이동하며 아이들과 인사하고 손을 마주치고 안아주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뽀로로에게 달려가서 인사를 시켰다. 아이가 만져보고 싶었는지 손을 뻗자 뽀로로는 아이 손을 맞잡아 주었다. 아이는 신나서 나에게 자랑했다.
"아빠, 나 뽀로로랑 하이빠이브 했떠!"
퍼레이드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 놀기 전에 아이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음식물 반입이 가능해서 아내가 전날 싸준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테마파크 비용이 세다 보니,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돈은 아끼기로 했다. 아이는 빨리 더 놀고 싶어서 먹는 둥 마는 둥 배만 채우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이가 금방 일어날까 봐 허겁지겁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아이가 빨리 가서 놀자고 보채길래 대충 먹은 것을 정리하고 가방에 넣었다.
다음 코스는 대형 미끄럼틀이 있었는데, 문제는 키가 100센티 미만이면 부모와 함께 내려오도록 되어 있었다. 여기서 내 체력을 상당히 많이 썼다. 아이와 함께 계단으로 올라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내려오는 일을 수십 번 반복했다. 겨울철이라도 실내라서 그런지 땀이 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못하겠어서 아이에게 뽀로로 기차 타러 가자고 꼬셨다. 아이는 다행히 내 말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빨리 아이를 앉아 기차를 타러 줄 서 있는 무리에 합류했다. 여기서 줄을 서고 기차를 타면서 내 체력을 좀 보충할 수 있었는데, 아이는 별로 재미없는 듯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을 잡고 또 대형 트램펄린이 있는 곳으로 나를 끌었다. 나는 어느새 이리저리 휘둘리며 아이의 손에 끌려 따라다니고 있었다.
세시 반쯤에 마술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네 시에는 물놀이를, 다섯 시에는 쿠킹클래스를 예약해 놓았다. 정말 하루종일 테마파크에서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트램펄린을 정신없이 뛰던 아이를 붙잡아 마술 공연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공연을 보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아이를 보니 고개를 떨구고 자고 있었다. 나는 공연 중간에 아이를 안아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난 나름 마술쇼가 재미있었는데, 아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산을 마치고 테마파크를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뒷좌석 카시트에서 곤히 잠들었고, 난 온몸이 축 쳐진 상태로 운전을 했다.
집에 도착하고도 아이는 자고 있어서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혹시나 깨버리면 내 쉬는 시간은 그 순간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나는 거실 소파에 바로 내 몸을 맡겼다. 마치 소파가 내 몸을 쑤욱 흡수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새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려서 깼는데,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아내는 내 어리둥절한 몰골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직도 자고 있었어? 정말 힘들었나 보네... 똥이는?"
나는 그 순간 시계를 보고 저녁 7시가 다 되어 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나니까 안방에서 문을 열고 아이가 부스스한 상태로 걸어 나왔다. 아이와 나는 거의 세 시간 가까이를 뻗어 있었던 것이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몸살기운도 없어 내 몸 상태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아이와 이렇게 하루종일 밖에서 혼자 놀아주는 것이 굉장히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결국 아이가 뻗는 순간에 푹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아이와 이렇게 노는 것도 시간도 잘 가고 아이와 두터운 추억도 쌓을 수 있어서 내 체력만 버틸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아이는 소파에서 방방 뛰었다. 나도 그런 아이를 맞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