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Sep 13. 2022

직장인 10년 차, '조용한 퇴직'을 선택하다

"회사 사장님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했으면 본인이 회사에서 끝까지 성공할 수 있는지, 아니면 쉽게 교체될 부속품일 뿐인지 나의 위치가 가늠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회사의 핵심 부서에 속해 있지도 않고, 우리 팀에는 나를 끌어 줄 임원조차 없다. 그저 난 서브 부서에 있으면서 회사 정책 상 이리 가라고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고 하면 저리 가야만 하는 자리에 있다. 회사가 위기라도 온다면 가장 먼저 정리 해고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위기감이 확 몰려왔다. 이대로 그냥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빨리 시작하여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요즘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라는 말이 해외 젊은 층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직장에서 치열하게 업무 성과를 내고 승진에 목매는 것보다는 회사 생활은 적당히 주어진 일만 수동적으로 하며 개인 생활에 더 집중하자는 의미이다. '일은 일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라는 인식으로 회사 업무와 개인의 성장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개념이다. '조용한 퇴직'이라는 말의 의미가 워낙 넓어서 개인마다 이를 실천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양하다. 어찌 보면 이미 기존부터 알고 있던 '워라밸'이란 용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개인 삶의 중요도 관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라는 평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사 지원부서에 있으면서 어떻게든 성공하고자 내 한 몸 불사를 것인지, 아니면 받는 만큼 또는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만큼만 일하고, 남은 시간은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여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았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지를 말이다. 아래와 같이 두 길을 적어놓고 곰곰이 확률을 따져보았다.


  (1) 회사 지원부서에서 임원이 되어 정년퇴직하기

  (2) 회사 일은 적당히 하고 업무 외에서 개인 역량 찾기


  (1)은 내 삶을 업무에 모두 매진하면서 뛰어난 업무 성과를 내야만 하지만, 지원 부서라 업무 성과가 뚜렷하지 않기에 임원은 고사하고 딱 하나 있는 팀장 자리도 꿰차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부서로의 전배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임원은 신이 선택하는 자리라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획기적인 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만 60세까지 정년이라곤 하지만, 선배들을 보니 50세 초반에 권고사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1)은 확률 상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2)의 삶은 어떨까? '회사 일은 적당히 한다'부터 정리해보자. 누가 보더라도 업무 시간, 태도, 성과가 남들만큼의 평균은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난 지원부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업무 난이도도 높지 않고, 야근도 거의 없기에 내가 효율적으로만 일한다면, 주변에서 말 안 나올 정도로는 쉽게 해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만큼 10년 차 정도 되니 업무 능숙도는 충분히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다음이 문제다. '업무 외에서 개인 역량 찾기'이다. 회사를 다음 날부터 바로 그만두어도 노후까지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이 있냐는 의미이다. 갑자기 앞이 깜깜했다. 회사에서 배운 업무로 중소기업에 가서 지금 받는 연봉이나 보전될 수 있다면 다행이지, 새롭게 뭘 해보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재테크 붐이 일었을 때 남들처럼 책이나 유튜브로 공부해 놓은 주식 전략, 부동산 투자를 써먹으면 다행인데, 지금 그런 투자 시장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이 (2)을 선택하기에도 꽤나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1)이랑은 다르게 (2)은 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결국 (2)의 길, 즉 '조용한 퇴직'을 선택했다.


  '조용한 퇴직'을 선택하고 나서 나는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며 나만의 길을 찾고 있다. 우선 지금까진 회사 일에만 목매어 있었기 때문에, 조용한 퇴직이 눈에 띄지 않도록 업무량을 조정하고, 수동적 업무 스타일로 전환하였다. 아마도 지원 부서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느 날 가까운 팀 선배가 "혹시 너 이직 준비해?"라고 말하길래 속으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순차적으로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가까운 사이라 티가 좀 났나 보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그냥 주식 시장이 요새 안 좋아서 그래요."라고 둘러댔다. 회사 일을 어느 정도 조정을 하니, 자투리 시간이 확보되었다. 그리고 위기감을 느끼니 출, 퇴근 시간을 활용하게 되었고, 수면 시간도 좀 더 줄이게 되었다. 그래도 최소 6시간은 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에 나는 제일 먼저 독서를 하였다. 자기 계발서와 경제서적을 주로 읽었고, 이따금 소설책도 읽었다. 그러면서 나를 파악하고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꽤 많은 시간 고민했다.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생산자로서 활동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뻔한데 난 유튜브나 블로그로 수익을 내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나의 색깔이 아니었고, 나의 길이 아니라는 걸 책을 읽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작곡으로 음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지만, 난 결국 글을 쓰기로 결정하였고,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출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내가 생산자로서 처음으로 해보고자 하는 나만의 길이었다. 이어서 다른 일도 준비 중이긴 한데, 그것은 기회가 되면 새로운 글로 자세히 다뤄볼 생각이다.


  직장 생활을 10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회사는 나를 평생 먹여 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자동차 엔진처럼 잘 굴러가고 힘 있을 때 문제가 생겨도 수리하면서 사용하지만, 기능이 구식이 되어버리거나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는 시점에서는 엔진 자체를 교환해 버리는 것과 같다. 아니면 요즘 나온 삐까 번쩍한 신차를 구매하는 방법도 있겠다. 내가 이 회사에서 정년까지 승승장구하며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무시해도 된다. 그분들은 그들만의 길이 분명하게 있고, 그 길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자체가 불안하고, 내 앞 길을 회사만 달랑 믿고 가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된다면, 하루빨리 나와 함께 '조용한 퇴직'에 동참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