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07일은 가장 소중한 딸이 태어난 날이다. 즉, 3년이 지난 오늘 2023년 07월 07일은 아이가 네 살이 된 생일인 것이다.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긴장을 좀 했는지 새벽 5시 40분으로 알람을 맞췄지만, 자동으로 눈이 떠진 시각은 5시 26분이었다. 미리 회사에는 오후 반차를 냈기 때문에 오전 근무시간만 채우면 되었다. 아내는 오늘 연차를 냈고 아이 어린이집 현장학습에 오전 동안 함께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파티용품과 생일 선물, 케이크는 미리 주문해서 아이 몰래 숨겨두고 있었다.
당일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와 업무를 하긴 했지만 손에 잘 잡히진 않았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불어야 할 풍선이 쌓여있을 테고, 집을 파티룸처럼 꾸며야 하는 미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더욱 밀도 있게 놀아주려면, 오전에 회사에서 체력을 좀 아껴놔야만 한다. 오후 반차를 썼기 때문에 오전 근무만 하면 12시에 바로 퇴근할 수 있지만, 점심을 먹지 않고 집에 가면 정신없이 굶어야 할 것이 분명하므로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퇴근했다. 회사와 거리가 멀어 반차를 쓰게 되면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제도가 생긴 이래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가, 딸의 생일로 인해 처음으로 반차라는 걸 쓰게 된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구도를 잡고 있었다. 삼각대도 세워놓고 쓰지 않는 아이폰을 고정하여 잘 찍히는지 테스트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오자마자 손가락으로 쌓여있는 풍선더미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후딱 옷 갈아입고, 풍선부터 불어서 벽에 붙여줘!"
나는 이미 아내가 상당히 많은 일을 해놨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눈치채고는 별 불만 없이 알겠다고 말했다. 다행인 건 풍선을 입으로 불지 않고, 공기 주입 펌프가 있었기 때문에 풍선 입을 펌프 입구에 걸어놓고선 손으로 왔다 갔다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8개 정도 풍선을 불어낸 시점부터 팔이 아파왔고, 숫자 '4' 모형의 대형 풍선을 부풀릴 때는 이미 내 팔이 아닌 것 같았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놨음에도 내 이마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오전부터 아이와 함께 등원하여 현장학습에 따라가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오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생일맞이 가족사진을 위해 계속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사진 찍을만한 파티룸의 형태가 갖춰졌고, 시간을 보니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당연히 하원은 나의 몫이었고, 아내는 아이가 올 때까지 조금 쉬고 있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내가 몸살이 날 것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은 걸어서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금방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는 할머니가 올 줄 알았는데, 기대하고 있지 않던 아빠가 문 앞에 있으니 더욱 신나 하는 것 같았다.
"아빠다, 아빠!"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나오셨다.
"오늘 생일이라서, 어린이집에서 생일 선물 나왔어요!"
나는 감사의 인사를 짧게 건네고,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왔다. 어린이집을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갈 때마다 선생님과의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햇빛은 너무나 뜨거웠다. 마치 내 목덜미를 잡아 뜯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빠르게 유모차에 태운 후 가림막을 씌웠다. 내 목덜미는 타들어가더라도 아이의 피부는 소중하니까 말이다. 아이는 이미 본인이 오늘 생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 친구들로부터 축하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빠르게 그늘 쪽으로 가서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자고 할까 봐 아이에게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고 미리 말해 놓았다. 아이는 다행히 순순히 유모차를 타고 집으로 와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평일에 엄마와 아빠가 모두 집에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들떴지만, 가장 신나는 건 집이 파티룸처럼 꾸며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소리치며 말했다.
"와, 키즈카페다!"
아이 눈엔 키즈 카페처럼 보였나 보다. 어쨌든 아이가 신나 하니까 꾸미기 위해 노력한 보람은 있었다. 아이는 헬륨가스로 채워진 풍선이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흔들어보았다. 우리 부부는 풍선에만 빠져있는 아이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함께 가족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아이는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주었다. 이때부터 제대로 된 가족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30분 넘게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아이는 풍선과 다른 장난감으로 눈을 돌리고 우리는 아이가 최대한 카메라 렌즈를 보게끔 유도했다. 이 사투는 아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핸드폰에 찍힌 사진과 영상을 촬영감독처럼 진지하게 살폈다. 난 마치 배우처럼 감독의 OK 싸인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초조해했다. 그러다 아내가 말했다.
"이만하면 됐다. 하나 건진 것 같아!"
아이와 나는 이제 행동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이는 풍선을 맘껏 갖고 놀기 시작했고, 나는 바로 소파에 몸을 뉘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소파와 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좀 누워야만 할 것 같았다. 아내는 포장해서 숨겨놓은 선물을 꺼내와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신나서 포장을 뜯어보았다. 선물은 다름 아닌 어린이용 카메라였다. 화질은 별로 좋지 않지만, 여러 가지 기능도 있고 동영상 촬영도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신나서 연신 '찰칵, 찰칵' 거리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이가 커서 사진작가가 되어 있는 상상의 끝자락까지 다녀왔다.
저녁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미역국 전문 체인점에서 먹기로 했다. 작년 아이의 생일에도 이곳에서 먹었고, 엄청 잘 먹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아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 계신 장모님과 함께 가기로 해서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장모님께서 집으로 오셨다. 장모님 손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이미 주문해 놓은 초코빵 케이크가 집에 있었는데, 아이는 자신의 생일 케이크가 두 개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저녁을 먹고 오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고 설득한 끝에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미역국 전문점으로 함께 갈 수 있었다. 가자미구이와 불고기, 조개미역국 등을 시켜서 맛나게 먹었지만, 아이는 지난번처럼 양껏 먹지는 않은 듯해 보였다. 아마도 집에 있는 케이크들이 눈앞에 아른 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이 식당에만 오면 밥을 두 그릇씩 먹게 된다. 정갈한 밑반찬들이 내 식욕을 마구 돋우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생일인 것 마냥 먹고 말았다.
장모님을 집에 모셔드리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와 2차를 시작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식당을 나오는 순간부터 차 타고 집에 올 때까지 수십 번을 말했다. 더 이상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아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꺼내 촛불을 붙였다. 아이는 그래도 먹는 것보단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촛불을 부는 행위가 더 좋았는지 '한번 더!'를 세 번이나 외쳤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못 먹을 수도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로 그 행위들을 드디어 중단시킬 수 있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로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내어 본인의 입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밥을 이렇게 혼자 먹어봐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아이의 생일이므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나 또한 아이스크림으로 입을 채우기만 했다. 그래도 스스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를 보며, 아내와 나는 언제 이렇게 빨리 컸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요즘 들어 아이가 조금은 천천히 컸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또 금세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그땐 또 얼마나 커 있을까. 다섯 살 생일엔 친구랑 놀겠다고 우릴 거들떠보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