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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Sep 14. 2023

목소리의 이미지를 다양화하라

늦깎이 성우 도전기(6)

  성우학원을 다닌 지 한 달이 지났다. 두 달 과정에 절반을 지나온 것이다. 취미반이긴 하지만 복식호흡법, 발성, 발음을 배웠고, 광고녹음 실습까지 해보았다. 아무래도 한번 배운 것만으로는 그리 실력 향상이 되지는 않을 테고, 평소에 꾸준한 연습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배운 것들을 자체 녹음을 통해 연습해 보고 있다. 그 연습한 결과물을 유튜브 콘텐츠로 올려 반응을 살피고, 틈틈이 내 목소리를 들으며 고칠 점을 스스로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고 나니 예전보다 지금은 조금 더 자연스럽고 채워진 목소리를 낼 수 있 되었다.


  같은 반 수강생들이 10명 정도 되고, 수업을 하다 보면 한 명씩 목소리를 내고 들을 때가 있다. 처음엔 외모와 목소리로 그들의 내면을 상상했었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는 목소리를 듣고 내가 상상했던 것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제 각자의 성격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목소리와 매칭된 그들의 인생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다. 밝고 까랑까랑한 목소리였던 분은 실제로 쾌활한 분이셨고, 힘 있고 확실한 목소리였던 분은 실제로 운동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이셨다. 작고 힘이 빠진 목소리를 가지신 분의 트라우마가 소심한 성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따금 말을 더듬는 사람도 본인의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통해 어떤 이미지를 그리고 있을까? 어느 날엔 성우학원 수업이 끝나고 같은 반 사람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찰나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는데, 그 어색함을 뚫고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 정말 좋으세요! 건강함이 느껴져요."


나는 갑작스러운 목소리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당황해서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아, 네... 고맙습니다."


그러고선 1층에서 내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당황해서 그녀의 목소리를 칭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 그녀가 말한 내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빈 말일 수 있으나, '건강한 느낌'이라는 말은 그녀의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성우학원 같은 반 분들에게,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나의 이미지가 건강한 사람으로 예상되고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자연스레 내고 있는 목소리는 내 성격과 생활태도 그리고 심리상태를 대변해 준다. 극적이거나 소극적인 마음가짐을 알아차릴 수 있고, 긴장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또한 성격이 급한지 차분한지도 예상해 볼 수 있으며, 기분이 좋은 상태인지 나쁜 상태인지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성우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은 내 상태 그대로를 내가 가진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가장 잘 전달하는 일인 듯싶다. 가장 나다운 목소리는 목울대가 가장 편안한 위치에 있을 때이다. 즉, 목울대를 손으로 가볍게 짚었을 때 너무 위로 올라가지 않고, 너무 밑으로 내려가지도 않게 중앙에 위치하여 변동 폭이 그리 크지 않은 상태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내가 내기 가장 편안 목소리를 찾아내서 내 솔직한 심리적 상태를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인 것이다. 이것부터 잘 해내야 성우로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성우학원에서 광고 녹음을 연습했을 때 예시로 어떤 광고 하나를 틀어주었는데, 20대의 맑고 청아한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참 듣기 좋은 목소리라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는데, 강사님께서 누군지 아냐며 물어보셨다. 속으로는 '연예인인가?' 싶었는데, 강사님께서 본인이 최근에 직접 녹음한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강사님의 나이는 40대로 추정되고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평소에 강의를 하셨는데, 광고 속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여서 깜짝 놀랐다. 여기서 다시 한번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전문 성우는 본인의 목소리를 잘 내는 것은 기본이고, 또 다른 이미지의 목소리를 내 것인 양 자연스레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광고나 더빙이나 내레이션이나 오디오북이나 라디오나 모두 각각의 원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또한 목소리를 듣는 청자도 각양각색이다. 그때그때 청자들이 원하는 분위기와 목소리를 연출해 낼 수 있는 것이 진짜 프로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상업용 목소리를 얼마나 많이 다양하게 보유하고,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느냐가 전문 성우의 무기이자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학원을 다니고 성우라는 꿈을 구체적으로 되뇌어 볼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성우 업계에서도 AI가 도입되고,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 일자리 수요가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거보다 공채 성우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성우지망생으로서는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성우를 꿈꾸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목소리의 힘을 알고 성우라는 직업이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에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기계 소리가 대체할 수 없는 섬세한 영역에서는 인간만이 낼 수 있는 고유의 소리가 더욱 가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꿈을 잃지 않으면 또 다른 새로운 기회는 분명 찾아올 거라 믿는다. 성우지망생으로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진 고유의 목소리를 기본으로 목소리의 이미지를 다양화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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