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후 아내와 마시는 술은 행복이다.
"마무리가 행복하면, 하루가 행복해진다."
11월 한파가 기승을 부린 토요일 아침. 여느 때나 다름없이 4살 난 딸아이가 꿀맛 같은 나의 늦잠을 깨우기 시작했다.
"아빠, 놀자!"
평일엔 매일 새벽 6시 전에 기상하지만, 주말이 시작되면 습관으로 인해 비슷한 시각에 깨더라도 다시 기분 좋은 아침잠에 빠져든다. 그러다 두 시간 남짓 더 자고 나면, 아이가 8시나 9시 정도에 나를 깨우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의 토요일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전날 아이의 숙면을 담당한 아내는 주말 아침엔 좀 더 잘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아이와 함께 아침을 먼저 먹는다.
"똥이야, 오늘 엄마 아빠랑 어디 놀러 가기로 했지?"
나는 입에 삶은 계란을 욱여넣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아침에도 초롱 초롱한 부담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내며 큰 소리로 답했다.
"놀이공원!"
아이가 갑자기 아침을 먹다 말고 일어나 본인의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여 아이를 말렸다.
"아냐, 아냐, 이따가 점심 먹고 오후에 갈 거야."
아내가 며칠 전에 롯데월드 행사로 인해 특가로 오후권을 예매해 놓았다. 오후 4시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이젠 아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롯데월드에 있는 유아용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끊은 것이었다.
아내는 몇 시간 더 잔 뒤 느지막이 일어나서 놀이공원에 갈 준비를 했다. 날씨가 추워 대부분 방한용 물품들이었다. 롯데월드의 실내 공간에서만 놀 예정이었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그 외에 아이의 장난감, 식기류, 세면도구 등을 준비했다. 롯데월드에서 아이를 저녁까지 먹이고 재워서 오기 위한 목적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오랜만에 가는 서울 나들이라 미리 근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이것저것 구경도 할 예정이었다. 아이는 몇 개월 만에 타는 지하철에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고, 우리는 덕분에 여유롭게 근처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체력을 미리 보충해야 이따가 아이와 실컷 놀아줄 수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딱 입장 시각에 맞춰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나는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말했다.
"똥이야, 놀자!"
아이는 다시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몰라도 롯데월드에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솜사탕을 사려고 해도 10분은 줄을 서있어야 했고, 놀이기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유아용 놀이기구는 줄이 금방 빠져서 다행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연인들이 한껏 꾸미고 왔고, 아이와 함께 온 부부들의 몰골은 우리와 비슷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격세지감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아이와 함께 키즈 놀이터에서 놀고 유아용 놀이기구를 대, 여섯 가지 정도 타면서 아이의 웃음소리에 나 또한 덩달아 즐거웠다.
저녁은 2층 카페테리아에서 중국요리를 먹었다. 다 먹고 나서도 퍼레이드가 있어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아이의 지친 기색은 아직 없었다. 다행히 퍼레이드 맨 앞 줄에 앉아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었다. 퍼레이드 콘셉트는 곧 있을 크리스마스였고, 산타할아버지도 있었다. 퍼레이드 중간중간에 아이들이 공주님 분장을 하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하고 싶다며 울고 불고 하는 걸 달래는데 진땀을 뺐다.
"똥이야, 6살쯤 되어서 기억이 또렷이 나면 그때 해보자. 지금은 너무 어려서 못한대. 산타 할아버지가."
롯데월드 놀이기구의 꽃인 회전목마를 타기 위해 팝콘을 먹으며 대기 줄에 서 있었다. 아이가 어릴 적엔 엄청 무서워했는데, 이번엔 왠지 잘 탈 것 같았다. 지금까지 탄 유아용 놀이기구도 생각보다 잘 탔기 때문이다. 두세 번 정도 회전목마가 돌아가는 걸 기다린 후 우리 차례가 되었다. 아이가 혼자서는 못 타서 나와 함께 탔는데, 회전목마가 돌아가니 아이가 대기하며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퍼레이드에서 봤던 것을 아쉬운 대로 따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9시 반이 넘어가는 시각. 아이가 슬슬 졸린 눈을 하기 시작했고, 우린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서로 직감하고 있었다. 짐을 챙기고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이를 따뜻하게 덮어준 뒤 지하철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엔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잠이 들듯 말 듯했다. 아내에게 말했다.
"똥이 곧 잘 거 같은데, 집에 가서 맥주나 한잔 마시자."
"뭐랑 마시게? 아! 좀만 더 걸어가면 횟집 있는데, 회 포장해 가자."
"좋은데... 회는 소주 안주잖아."
"괜찮아. 맥주랑 마셔도 맛있어. 그리고 집에 복분자 남은 거 좀 있어."
우린 그렇게 발길을 돌려 회를 포장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유모차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짐을 정리한 뒤 드디어 우리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공원도 즐거웠지만, 오롯이 우리 부부만의 시간으로 단 둘이 술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작은 행복이었다. 포장해 온 회와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맥주를 한잔씩 들이켜니, 오늘 하루의 고단함이 싹 씻기는 듯했다. 나도 그랬고, 아내도 그랬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육아하느라 고생했어."
"고생은 뭘... 우리 아이인데..."
"그래도 고생은 고생이지. 힘들면 고생이야. 고생한 우리를 위해 짠 하자!"
"그래,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짠!"
맥주를 다 마시고 꺼낸 복분자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빠르게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일요일인 내일 아침부터 또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하루를 맞이해야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