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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27. 2024

한국사회는 언제까지 술로 일해야 할까?

직장인이 연달아 세 번 회식한 썰

  최근 회사에서 이, 삼일에 한 번꼴로 회식을 연달아하게 되었다. 하루는 신규 업체와 새로운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서, 하루는 업무지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는 조직활성화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식도 일의 연장이지만, 아무런 수당나오지 않는다. 물론 회사 돈으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기는 한다. 하지만 차라리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연달아 세 번이나 회식을 하다 보니, 현타(?)가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술로 일해야 하는 걸까?



  첫 번째 회식은 전라도 광주에서 시작되었다. 께 연구과제를 진행하기 위해 팀장과 나는 아침부터 경기도에서 샘플을 차에 가득 싣고 내려갔다. 과제는 초기 단계였고, 함께 일하기로 한 분들은 신규 업체 분들이었다. 개발 과제를 착수할 때 처음 만난 뒤 전화와 화상회의를 통해 몇 번의 진행 사항들을 확인했다. 어느 정도 진척된 내용들이 있어서 실적을 들고 두 번째 대면 회의를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광주에 도착한 우리는 신규 업체 담당자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이번 회의는 업체의 센터장이 직접 참석하여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더 깊은 얘기들이 논의되었다. 추가로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역할을 나누고 일정을 계획했다. 나름 성공적인 회의였다. 센터장이 짐을 정리하고 가려는 우리에게 말했다.


"바로 올라가십니까?"

"아니요. 내일 오전에 근처에서 다른 회의가 있어서 하루 묵고 갑니다."

"그럼 저희와 저녁 식사 하시죠?"

"아, 네. 좋습니다."


대략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또 즉석에서 회식이 잡혔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해 둔 숙소 근처 고깃집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서 자연스레 술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동안의 과제의 진행 사항을 자축하고, 앞으로의 성공적인 실적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회의 때 하지 못했던 개인적 신상 얘기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업무적인 2D 관계에서 개인적인 3D 관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생활, 결혼생활, 대학시절, 군대, 신입사원 시절, 자식들 얘기, 과거 수행했던 과제 얘기 등등의 얘기들로 술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로 사이가 돈독해졌고, 이 과제뿐만 아니라 새롭게 도출해 볼 수 있는 협업 과제의 아이디어도 샘솟았다. 회식의 마무리에서 잔뜩 취한 센터장과 우리 팀장은 부등 껴안고 서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우리 충분히 승산이 있으니까, 끝까지 함께 가봅시다!"

"그러시죠! 조만간 경기도로 올라오시면 우리가 거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술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진짜 친구처럼 만들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음날이 되면 민망함과 어색함이 밀려오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회식은 우리 회사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외부 용역 업체와 지속적인  업무 지원을 위해 비밀유지계약서에 서로 날인을 하는 날이다. 연간 계약을 체결하고, 비용은 상, 하반기에 나눠서 지급하기로 했다. 이미 이 업체는 업계에서 입소문이 나 있어서 타 회사들의 많은 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우리 회사 외에도 다른 경쟁사들의 동향을 꿰뚫고 있었다. 특히나, 경험이 많아 관련한 업무 노하우가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어쩌면 이번 회식은 우리가 이 용역 업체에게 더 빠르고 정확한 업무 지원을 약속받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간단히 회사에서 미팅을 마친 뒤 용역 업체 부장님의 차를 타고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역시나 이번 회식도 나와 팀장이 참석했다. 인원이 3명뿐이라 따로 예약하지는 않고, 우리가 자주 회식을 하는 소고기집으로 향했다. 부장님과는 음 갖는 술자리라 시작은 어김없이 어색했지만 한, 두 잔 술이 들어가니 깊은 얘기들이 오갔다. 회의 때 미처 못했던 우리 업무에서 추가로 필요한 내용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고, 용역 업체 부장님은 기분 좋은 이 자리를 망치기 싫어하듯 적극 수용하는 자세였다. 용역 업체의 내부적인 사정도 들을 수 있었고, 가장 큰 수확은 다른 경쟁 업체들의 동향을 엿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쟁사가 우리와 비슷한 업무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파악한 팀장은 우리의 업무 방향이 맞았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 팀장이 말했다.


"오늘 계약으로 더 든든해진 것 같네요. 하하."

"앞으로 확실히 지원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하."


그렇게 우리는 연거푸 짠을 해대며 앞으로의 돈독한 관계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



  세 번째 회식은 팀장 위에 실장이 주선하는 조직활성화 관련한 회식이다. 나와 연차가 비슷한 두 명, 그리고 실장이 참석하여 총 네 명이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실장 세, 네 명씩 그룹을 지어 돌아가면서 조직활성화 아이디어와 의견을 청취했다. 아무래도 술이 한잔씩 들어가면 더 솔직하고 진솔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는 걸 기대하는 듯했다. 처음엔 역시나 딱딱했다. 우리 세명은 실장을 평소에 마주칠 일이 잘 없는, 조직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이런 자리를 만든 것부터가 어색했다. 빠르게 소맥으로 두 잔을 연달아 마셨고, 이런저런 회사생활 얘기들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전에도 물론 이러한 조직활성화 명목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고, 우선 그런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었다. 실장은 모든 구성원들이 조금 더 친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일하길 원하는 듯했다. 그래야 이직이나 퇴사의 위험을 그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점차 경쟁력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조직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점차 우리들의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모인 세 명 중 연차가 가장 높았던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실장님도 아시는 것처럼, 몇 년 전에도 이런 활동 한, 두 번 해본 거 아니잖아요. 지금 그래서 조직이 활성화되었나요? 어차피 그때뿐이고, 행사 주최한다고 담당자들만 힘들겠죠."


옆에서 후배들이 거들었다.


"맞아요. 어차피 바뀌는 건 한순간만이예요. 경쟁 집단에서 조직활성화라는 게 참 어려운 숙제 같아요."


실장은 우리의 얘기들을 가만히 듣더니, 말을 꺼냈다.


"너네 말이 다 맞아,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너네가 말했듯이 치열한 경쟁만 하게 될 거야. 조직은 더 딱딱해지다가 부러지겠지. 잠시라도 이런 활동들로 추억이 생기고, 서로 웃고 하다 보면 그나마 말랑말랑해져. 나는 딱 그 정도면 돼. 서로 친구처럼 지내라는 말이 아니야."


  조직장이 생각하는 의도를 파악한 우리는 그때서야 조직활성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 술 마시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니, 다양하면서도 솔직한 아이디어가 터져 나왔다. 그중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하나 나왔는데, 실장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실장이 앞으로 남은 다섯 번의 술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 중 이게 최선일 거라 자부했다. 이후로 조직과 회사에 대한 불만들, 우리 또래에서의 사회적 문제들, 경제 얘기들을 심도 있게 얘기했고, 장장 4시간에 걸쳐 1차 회식을 마무리했다.



  연달아 세 번의 회식은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든 과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술 마시면서 일해야 하는지, 다른 회사나 다른 조직도 이렇게 일하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과거엔 이것보다 더 심했을 거라 예상해 본다. 이번 세 번의 술자리에서는 술로 인해 관계가 빠르게 돈독해졌고, 솔직한 업무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었다. 만약 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 년에 몇 번 보지도 않는 업체 담당자들과는 여전히 어색한 상태로 계획한 일에 대해서만 서로의 실적들을 공유할 것이다. 물론 성향이 잘 맞고 운이 좋다면 친분이 생길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과정을 거칠 것이다. 또한 다른 경쟁 업계의 동향이나 솔직한 뒷얘기(?)들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업무를 진행하면서 숨어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술김에 나온 얘기들은 이런 것들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게다가 정통 제조업인 우리 조직은 상명하복이 강하고, 허심탄회한 아이디어를 구성원들이 내기 힘든 딱딱한 분위기이다. 윗사람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이런 조직에서는 술이 없으면, 구성원들의 솔직한 불만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윗사람이 가감 없이 듣기는 힘들다. 분명히 술은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제 역할을 하지만, 건강과 시간을 빼앗긴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앞으로 미래 세대에서는 이런 술 마시는 회식문화가 점차 사라지겠지만,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술 없이도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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