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은 찌질해야 한다

"찌질함은 나의 자양분"

by 똥이애비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찌질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 보았다. '찌질하다'라는 용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았다.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언제 가장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했을까.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엔 어떻게든 술 마시려고 했던 날들이 기억난다. 친구와 주머니를 탈탈 털어 편의점에서 소주와 새우깡을 샀다. 심지어 소주도 1.5리터짜리 담금술을 샀는데 양이 많고 쌌다. 교내 잔디밭에 앉아 나발을 불며 꿈을 이야기했던 일. 아무래도 찌질하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낭만이 있었다. 바닥을 모르던 찌질한 대학생 시절에 같이 바닥을 누빈 내 친구는 평생 친구가 되었다.


남중 남고를 나온 내가 대학교 신입생 때 여자 친구라는 것을 처음 사귀었던 시절. 여자라는 생명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라서 허둥지둥했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말했다. "애인 사이에 우산은 하나로 같이 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동안 난 비 오는 날엔 각자 하나씩 우산을 쓰는 게 더 편하고, 비도 덜 맞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효율성 관점으로 여자 친구를 대하고 있었으니, 나의 첫사랑은 6개월도 채 못 갔다. 너무나 서투르기에 찌질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기까지 하지만 여자 친구는 오랜 기간 동안 나를 이해해 준 것이었다. 6개월의 찌질했던 기간 동안 나는 여자라는 존재를 인식했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몸으로 깨달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찌질했던 순간은 아무래도 신입사원 시절일 것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만큼 무척이나 어리숙했다. 특히, 나는 남들보다 신입사원을 오래 했다. 그만큼 찌질했던 나날들이 더 길었던 것이다. 처음 입사하여 팀 배치를 받을 때 인사팀에서는 나를 전공이 다른 곳으로 배치했다. 그때의 회사 사정이 있었겠지만, 대학교 시절 얘기했던 꿈과는 한참 더 멀어졌다. 1년 간 그 팀에서 찌질했다. 일도 찌질, 관계도 찌질, 커리어도 찌질. 1년 후엔 내 전공과 맞는 팀으로 전환 배치되었다. 다시 시작된 신입. 옮긴 팀에서는 OJT라는 신입 교육부터 또다시 시작됐다. 신입사원을 두 번하면서 찌질하고 또 찌질했다. 팀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완전 나락으로 가 있었고, 회사 생활을 바짝 엎드려야 했다. 하지만 이 찌질했던 2년 간의 신입사원 시절에 나는 지금까지도 써먹는 회사에서 필요한 스킬들을 많이 배웠다. 사수들이 찌질한 내 모습을 보고 불쌍해서 자신들의 노하우를 스스럼없이 알려준 것도 한몫했지만,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느라 수첩 빼곡히 업무 절차를 써내려 갔던 나의 처절함도 한몫했다.


회사에서의 찌질함은 나를 더욱 갈고닦게 했다. 잃을 게 없고 바닥을 다졌으니, 꾸준히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찌질했기에 주변에 쉽게 물어볼 수 있었고, 찌질했기에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회사 생활한 지 몇 년이 지나자 찌질함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엔 단단함이 자리했다. 너무나 단단하여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난 깨달았다. 직장 생활은 찌질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새로운 도전은 찌질함과 함께 한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초보자를 의미하고 초보자는 찌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이는 이 찌질함을 극복하고 단단해지느냐, 극복하지 못하고 찌질한 상태로 남아 있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렇다고 평생을 찌질하게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찌질함은 두려움과 민망함을 동반하므로 삶이 황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찌질함은 적정 기간 동안 일시적인 것이고, 충분히 노력하여 극복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직장 생활에서 찌질해지는 순간은 신입사원 시절과 전환 배치로 팀을 옮기게 된 순간, 타 회사로 이직하게 될 때 등 회사에서 새로움과 맞닥뜨려야 할 때이다. 이 황금 같은 찌질한 순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하는 자양분으로 생각하여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16화애사심이 쫘악 빠지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