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입사원 때 이런저런 이유로 1년 만에 다른 팀으로 전환배치를 요청하였다. 도중에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결국 난 지금의 팀으로 배치되었다. 그곳에선 이미 전 팀에서 내 얘기를 전달받은 사람들의 눈초리가 차가웠다. 전 팀에서는 1년 만에 신입이 다른 팀으로 가겠다는데 좋게 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입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대하면 오히려 다행이고, 아예 인사조차 받지 않는 선배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원해서 온 팀이기에 나름 최선을 다해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기로 했다.그러면서 사람에게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깨져버린 신뢰를 복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나도 욕심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팀원들의 인식이 달라지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사람이 변하는 게 보이면, 가식이라는 딱지가 추가로 붙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그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신뢰를 구축해야만 했다. 이번 글에서는 9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쌓고 있는 신뢰를 위한 나의 처절한 노력들을 담아보았다.
동일한 행동 패턴
최대한 똑같은 행동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쉽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침에 똑같은 시간에 매일 출근하고, 퇴근 시간도 조정이 가능하다면 최대한 비슷하게 맞춘다. 보고서의 양식도 하나로 일치시키고, 회의를 할 때 항상 같은 자리에서 경청하며, 내 의견을 내세울 때도 '동조 후 의견 개진'의 전략을 일관되게 사용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방금 말씀하신 선배님 의견 중에 그 업체를 더 조사해 보는 게 좋겠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그 업체의 경쟁 업체도 함께 알아보면 어떨까요?"라는 식이다. 이렇게 최대한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심하고 안정적인 심리 상태가 된다. 반대로 갑자기 행동이 달라지면 경계하게 되고 주목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불안을 야기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런 행동은 피하는 게 좋다. 내가 이렇게 최대한 동일한 행동 패턴을 몇 년 간 계속 보여오다가 '드디어 신뢰가 어느 정도 쌓였구나'라고 인지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독감이 너무 심하게 걸려 아침에 팀장님께 전화하여 당일 연차를 사용하였다. 마침 그날은 오후에 팀원 전부가 모여 워크숍을 하는 날이었는데, 오후에 팀원들이 다 모이고 나니 내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출근해서 어디 회의 갔거나, 실험실에서 당연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팀장님이 깜박하고 미리 말하지 못했고, 워크숍이 시작되고 나서야 내가 독감에 걸렸다는 것을 알렸다. 이 얘기를 후배에게 듣고는 팀원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것에 내심 뿌듯해했다.
경계가 약해질 때
사람마다 회사에서 경계가 약해지는 때가 있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고 신뢰를 구축하면 좋다. 사람들이 쉽게 선입견을 가지는 게 그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해서 오는 오해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점심을 먹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활기를 띄는 사람이 있는데, 눈치를 보다가 이런 사람의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눈다. 또 다른 사람은 회식 때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재미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재미없으면 곤욕이다. 하지만 좀 만 참고 들어주기만 해도 이 사람은 나를 좋게 본다. 왜냐하면 주변에 그렇게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회사에서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나 전문적 역량을 배우기 위해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에서는 항상 프로페셔널 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본인의 경계가 있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런 상황을 잘 캐치하면 친분을 더욱 쉽게 쌓아갈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당신에게 "바빠? 커피 한 잔 할까?"라고 먼저 말해 온다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이미 구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커피를 함께 마시는 행위만큼 친분을 나타내는 게 없기 때문이다.
15분 먼저, 하루 먼저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 생활 속에서도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면 신뢰를 쌓기 쉽다.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되면 그 순간만큼 신뢰가 쌓여가는 것이다. 친구 중에도 워낙 가깝기 때문에 시간 약속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한 사람에서만 계속 누적되면 불화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친한 사람도 한순간에 갈라놓을 수 있는 시간 약속은 회사에선 더욱 철저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물론 제 시간을 맞추는 것만 해도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함께 모이는 회의 시간이나 보고 자리는 15분 먼저 미리 와 있도록 하고, 취합해야 하는 자료나 공유해야 하는 자료는 데드라인 하루 전에 미리 전달해주도록 하면 더욱 빠른 신뢰 쌓기가 가능해진다. 가끔 이벤트성으로 긴급하게 문의하거나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즉각 대응해주면 나에 대한 신뢰는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처럼 남들이 기대하는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나의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신뢰라는 울타리를 더욱 견고히 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회사 생활에서 내 일을 처리하고 제 시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람의 신뢰를 얻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시간을 쪼개가며 남의 시간에 보탬이 되어야 비로소 신뢰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나만의 세 가지 방식을 소개하였다. 최대한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이고, 사람마다 다른 경계를 허무는 타이밍에 친분을 쌓으며,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을 넘어 좀 더 일찍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회사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 하기도 바쁜데 이걸 다 신경 쓰면서 어떻게 해요?"라고 물을 수 있다. 회사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굳이 나는 그렇게까지 해서 신뢰를 쌓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글은 첫인상의 반전을 노리거나, 탄탄한 신뢰의 이미지를 갖고 싶은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회사에서 나를 '신뢰의 아이콘'으로 보고 더 큰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지뢰의 아이콘'으로 보고 피해 갈 것인지는 결국 내가 쌓아온 노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