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친구들 모임이 몇 개 있다. 초등학교 친구 모임은 1년에 1~2번 정도 만난다. 그때 당시에는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각자의 영역에서 사회생활하다 보니 지금은 거리가 생겨버렸다. 중학교 시절 다니던 학원 모임은 더하다. 그렇게 친했는데도 1년에 1번 정도 볼까 말까 한다. 그나마 고등학교 친구 모임은 4명이서 꾸준히 연락하고 세 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 이 4명은 모두 직장인이고 사는 게 비슷하다. 그래서 아직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대학교 친구 모임은 나 포함 3명뿐이다. 심지어 한 명은 부산에 있어 자주 모임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1년에 3~4번 정도 만나고, 거리가 먼데도 나에게 진정한 친구로 남아 있는 것은 이 대학교 친구들 뿐이다. 한 때 대학교 선배는 대학생 때는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사는 거리가 멀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만났을 때 아무런 부담이 없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얘기해도 거리낄 게 없다. 그들과 나 사이엔 어떠한 포장이나 가식이 없다. 그냥 각자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공유된 시간을 즐길 뿐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친구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학생 때도 분명 그런 말을 들었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았기에 신입사원 때 살짝 기대를 갖고 동기들 모임에 자주 나갔었다. 회사 선배들에게 "회사 생활하면서도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동기들은 자기만의 영역이 단단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친한 것 같아도 실상 예의를 차리고 있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나중에 회사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문득 내 울타리도 이렇게 단단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직장 생활 연차가 쌓여갈수록 자연스럽게 동기 모임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직장 생활에서의 진정한 친구는 단 3명 남았다. 누군가는 '사회생활 더해야겠다'라고 말할 수 있겠고, 누군가는 '3명이나 있으니 사회생활 성공했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 3명의 친구 얘기를 해보려 한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경력 입사자
이 친구는 사실 고등학교 모임의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세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이지만, 나에게 진정한 친구로 보기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 친구가 모임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너네 회사 어때? 이번에 경력사원을 뽑는다는데 한 번 지원해보려고 해서..." 말로는 한 번 써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친구가 우리 회사에 붙어서 같이 회사에 다닌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나는 그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몇 달 후 그는 우리 회사에 당당히 입사했다. 나랑 같은 연차였다. 그때서야 그가 어떤 경력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한 건지 알게 되었다. 모임을 자주 했어도, 실제 회사에서 하는 업무까지 상세히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친구가 입사하자 우리는 고등학교 모임 외에도 회사에서 자주 만났다. 단 둘이 자주 만나니까 서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에게도 나와 같이 세 살 딸아이가 있어서, 항상 육아 얘기로 시작하고 회사 욕으로 끝났다. 그렇게 자주 만나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로 그의 벽을 허물었리라. 그렇게 우린 진정한 친구로 나아갔다. 단 둘이 자주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고, 서로의 상황에서 공통점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회사 후배이자 운동 메이트
이 친구는 나보다 3년 정도 늦게 들어온 회사 후배다. 나이도 나보다 3살 어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내 정신연령이 어리 다기보다는 그의 정신연령이 높아 나와 잘 맞았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삶을 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많이 배우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쓰는데도 그의 동기부여가 있었다. 처음에 그가 입사했을 때부터 친한 건 아니었다. 그냥 후배 하나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나는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후배도 같이 하자고 했다. 본인이 헬스를 좀 배우기도 했거니와, 같이 하면 서로 보조도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겠다 싶어 함께 헬스를 다녔고 그렇게 2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운동했다. 중간에 바디 프로필도 함께 찍었고, 운동하다가 힘들어서 같이 술 한잔 하러 간 적도 꽤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부족한 경제관념이나 생활의 지혜를 주었고, 나는 그에게 회사 생활과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함께 헬스를 다니지 않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로 남아있다.
내 대학 동기의 남편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내 대학교 여자 동기의 남편이 내 회사 동기이다. 즉, 내가 소개해줘서 결혼까지 한 커플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 동기는 신입사원 연수 때 나와 같은 조로 활동하면서 친해졌다. 각자의 팀으로 배치받고 나서도 우리는 틈틈이 만나 커피도 마시고 술도 한잔 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여자 얘기가 나오고, 내 대학교 여자 동기를 소개해 주기로 해서 그렇게 둘은 만났다. 별 기대 없이 소개해줬지만, 나름 잘 만났고 내 아내와 함께 커플로도 잘 놀려 다녔다. 그 후 아니나 다를까 회사 동기는 나에게 청첩장을 내밀며, 네가 사회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회사 동기는 자연스레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커플로 함께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쌓고 있다. 그러다 부부 싸움이 생기면 대학교 동기는 나에게 회사 동기를 흉보고, 회사 동기는 나에게 대학교 동기를 흉보지만 나는 최대한 중립을 지킨다.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그들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이번에도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날 걸 알기에 마치 야구 심판처럼 경기를 관중한다. 그게 또 재밌기도 하고, 나의 부부생활도 그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많은 조언을 얻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 회사 생활 동안 사귄 진정한 친구 3명을 만나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이 겹쳐서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진정한 친구로 발전해 온 것이다. 회사 생활의 진정한 친구는 신이 내려주시는 선물인 걸까? 아마도 이러한 우연이 없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우연을 발전시켜 진정한 친구로 남기 위해선 갖춰야 할 자세가 있다. 먼저 관심 있게 잘 들어줘야 한다. 그들의 영역에 내 발자국을 남기면 어느새 그 땅은 물렁해진다. 그리고 내 얘기를 스스럼없이 말한다. 내 울타리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공유하게 되면, 자연스레 우리가 만나왔던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의 진정한 친구가 바로 옆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