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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조직 변경에 대한 단상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by 똥이애비

조직 변경의 계절이 돌아왔다. 틈틈이 이뤄지기도 하는데 보통 대략 10~12월 정도에 대규모로 조직 변경이 이뤄진다. 1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승진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는 때 이므로 아무래도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일이 손에 잘 잡힐 리 없다. 끼리끼리 모여 소문에 대해 얘기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서 서로 갑론을박하느라 바쁘다. 우리 같은 실무자들은 사실상 조직 변경이 공식화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지루한 회사 생활에서 새로운 변화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대를 품고 있다 보면, 나름 관리자에게서 조직 변경에 대한 얘기가 구두로 전해진다. 이때쯤이면 거의 확정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때부터 팀장과 같은 관리자들이 조직 변경에 포함되는 실무자들을 한 명씩 불러 면담을 하기 시작한다. 회의실에서 대략 20~30분가량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사안(?)이 심각한 경우엔 1시간도 넘어갈 때가 있다. 면담이 끝나고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오늘은 이 각양각색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남의 집 구경

이번 조직 변경에 대해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본인 회사 생활에서의 영향이 미미한 사람들이다. 팀장이 따로 면담도 안 부른다. 그저 면담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기웃기웃 대고, 면담이 끝나고 나오는 사람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이런 사람들은 관리자에게 직접 듣는 말이 잘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상황을 예측한다. 이게 필요한 이유는 조직 변경을 통한 변화에 따라 본인 인간관계에서의 대응 전략을 미리 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 변경에서 살짝 소외되어 있긴 한데, 그게 아쉬운 사람도 있고 다행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조직 변경만큼은 자신에게 아무 탈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저 본인들이 변화가 없기에 남들의 변화된 상황을 마치 불난 집 구경하듯이 옆에서 가만히 지켜본다. 속으로는 다양한 생각들을 하는데,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 생각들도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쌤통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얼마나 잘되나 보자" 같은 생각들이다. 이렇게 조직 변경이 남의 집 구경이 되는 순간 연말이 지나 다음 해 초까지도 변화된 상황을 찾아다니며, 철저한 관찰자 입장에서 재미를 추구하기도 한다.


드디어 내 세상

이번 조직 변경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직,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사수와의 트러블로 직장 생활이 고단했는데, 사수가 이번 조직 변경으로 다른 팀으로 가버리고 본인이 그 업무를 주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조직 변경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인원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좋은 결과가 생기기에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겉으로는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한다. "선배님, 저만 남겨두고 이렇게 가시면 어쩝니까? 빈자리가 커서 제가 혼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너 때문에 마음고생한 거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어쨌든 배운 건 있으니까 잘 가고 다신 마주치지 말자.'


또 다른 인원은 이번 조직 변경으로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다. 승진을 해서 주요 요직으로 간다던가, 다른 선배들을 제치고 팀장으로 올라서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원해서 다른 팀으로 전환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들은 이미 팀장과 면담을 하고 나올 때부터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나는 그걸 알아차리고 접근해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어본다. 이들은 신나서 면담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한 톨도 남김없이 쏟아낸다. 신난 게 느껴진다. 그들의 얘기를 한참 동안 들어주고 축하해준다. 약간 속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잘 나가는 사람이 계속 잘 나가기에, 그들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드디어 기다리던 자기들만의 세상이 온 것처럼 한층 더 당당해져 있다. 이 한껏 올라간 당당함과 자존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겸손해져야 하고, 내가 받은 혜택을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다.


걱정과 한숨, 그리고 억울함

이번 조직 변경의 피해자들이다. 사실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게 이들은 이번 조직 변경만으로도 자존감이 많이 꺾여있다. 승진이 누락된 이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맡았던 직책을 내려놓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팀에 억지로 끌려가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는 자신보다 한참 뒤에 들어온 후배가 치고 올라가 자기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이게 본인이 남들보다 노력을 덜해서 일어난 사태일 수도 있지만, 회사 정책 상 아니면 곳곳의 인맥이 반영된 결과물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에 의한 피해자라면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회사의 잔인함에 억울하면서도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들은 앞으로의 자기 앞길에 대한 걱정도 함께 몰려온다. 승진이 누락된 이는 내가 다른 동기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에 '내 길이 맞나?'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 있고, 심지어는 새로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직책을 내려놓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연차가 있어서 관리자의 직책을 맡아 왔던 것인데, 이를 내려놓는 순간 다른 곳으로 가기 쉽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다시 실무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몇 년간 실무에 손을 놓았기에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후배가 팀장으로 올라가 보고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회의감까지도 느낄 수 있다. '이제 나갈 때가 온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본인이 지금껏 회사에 바쳐왔던 세월들에 대한 기억과 앞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고민들이 맞물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또한 본인 자존심만 내려놓으면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한 번의 눈을 감아보기도 한다. 아직까지 이 상황이 오지 않은 나로서는 대략 그분들을 마주쳤을 때,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예상만 할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글에서 표현한 것보다 더 깊은 고민과 한숨들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면서 조직 변경이 있을 때, 나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 관찰자의 입장이 되기도 했었고, 내가 원하는 팀으로 전환 배치되어 축하를 받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승진이 누락되어 몇 달간 회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위에서 얘기한 세 가지 경우가 내가 직접 겪었던 상황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든 이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겪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아직 세 가지 상황을 못 겪은 분들은 내 글을 참고해서 조직 변경이 일어났을 때 본인의 심리 상태와 마음 가짐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회사 조직 변경으로 특정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 또는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겪은 사람들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단편적인 조직 변경에 너무 신나 하지도 또는 너무 좌절하지도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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