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애사심이 쫘악 빠지는 과정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여러 개 만들어 놔야..."

by 똥이애비

생각해보면 나도 신입사원일 땐 애사심이 충만했었다. 애사심이란 뭘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찾아보았더니 '몸담고 있는 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입사가 확정되고 나서 나는 나를 뽑아준 회사에 무한히 감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도 많이 받았다. "그 회사 좋다는데,

고생 많았네.", "와, 거기 경쟁률 높다던데, 어떻게 갔어?" 그렇게 회사가 나의 자랑이 되었고, 회사에서 일하는 나의 멋진 모습을 상상했다. 신입사원이니 입사 초기에 연수와 교육이 많았다. 신입사원들을 모아놓고 연수를 할 때는 시키는 걸 아무런 불만 없이 다 했다. 군대처럼 새벽 6시에 기상해서 체조를 할 때도, 조별로 애사심을 보여줄 수 있는 짤막한 동영상을 만들 때도 나는 회사 입사하면 당연히 회사 문화를 따르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심지어 회사 임원들 앞에서 며칠간 배운 율동을 추며 재롱을 부릴 때도 나는 임원들 눈에 띄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직 제대로 일도 안 했는데, 내 애사심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교육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창립한 명예회장의 생애를 달달 외우게 할 때도 있었고, 회사의 비전을 시험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인사팀 직원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우리들에게 조직의 새로운 피로 회사의 문화를 바꿔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강을 온 임원 한분은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고 처절하게 일해서 이 위치까지 올라왔는지에 대해 얘기하며 회사 생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회사의 별인 임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심 속으로 '회사에 입사했으면 임원은 달아봐야지'라는 마음도 있었다. 교육을 받으면서도 회사는 나에게 애사심을 주입했고, 열린 마음으로 임했던 나는 그대로 그 애사심을 흡수했다. 교육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날 인사과 직원들과 맥주 파티를 하며, 건배사를 하였다. "이렇게 저를 뽑아준 회사에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빨리 적응하여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이런 의미였다.


직장 생활을 한 회사에서 10년 간 이어오다 보니, 이런 신입 때의 패기와 애사심을 쫘악 빠진 지 오래다. 마치 마른걸레처럼 아무리 쥐어 짜내도, 한 방울의 애사심도 나오지 않는다. 10년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회사에 목숨 바쳐 일할 것처럼 했던 나의 신입 시절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지금도 가끔 동기들을 만나는데, 신입사원 시절 얘기를 하면 모두 소스라친다.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TV에서 나오는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했던 게 그냥 이젠 재밌는 추억거리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10년 전 충만했던 애사심이 지금은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된 나름의 이유들은 있다. 그들과 나의 이야기를 통해 애사심이 쫘악 빠지게 된 과정을 조금 살펴보도록 하자.


잘 돌아가는 기계 부품일 뿐

신입사원 시절 모든 연수와 교육을 끝내고, 현업에 투입되었다. 나의 이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무슨 일이든 해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사수가 정해지고, 사수를 통해 실무를 배워 나갔다. "신입 교육 때 도대체 뭘 배운 거야?", "내가 말했는데 금세 까먹었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야." 뭔가 내가 생각했던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일이 아니었다. 나만의 역량을 뽐낼 수 있는 업무 구조도 아니었다. 그저 기계 부품처럼 일이 잘 굴러가도록 만드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거조차도 쉽지 않았다. 정해진 규칙과 따라야 할 절차들이 더 이상 나라는 가지가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버렸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구분해냄으로써 애사심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었다.


애사심이 가장 높은 직원, 임원

현업을 이어가는 동안, 아무래도 팀장을 포함한 팀원들에게는 애사심이라는 게 잘 보이지 않았다. 신입사원인 내가 애사심이 가장 높은 것 같았다. 어느 정도 현업에 적응할 때쯤 우리 조직을 이끌어가느라 너무나도 바쁜 임원과의 식사자리가 마련되었다. 신입사원은 모두 해야 하는 절차 중에 하나였다. 대화를 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우리 조직에서 내가 애사심이 제일 높은 게 아니었구나!' 한 풀 꺾인 나의 애사심을 그대로 짓누르듯 임원은 상상 이상의 애사심을 나에게 보여줬다. 마치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물아일체가 아닌 사아일체 수준이었다. 주말 밤낮없이 일했던 과정들, 가족 행사보다 회사 행사를 우선시했던 날들, 본인 몸은 망가지더라도 회사는 망가지지 않도록 했던 일들 모두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는 회사에 모든 걸 바쳤다. 몇 년이 지나고 그렇게 회사에 몸 바쳐 일하던 애사심 최상의 임원은 어느 주말 회사에서 온 전화 한 통으로 한순간에 소리 소문 없이 잘려 나가고, 그 자리는 다른 임원으로 대체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의 애사심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배신감으로 인해 닫힌 마음의 문

임원도 한순간인데, 평범한 직원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우리는 그저 회사에서 불필요해지는 순간에 바로 짐을 싸면 되는 것이었다. 연말만 되면 과, 차, 부장 할 거 없이 바로바로 짐을 싸고 집으로 갔다. 그들이 애사심이 얼마나 있었는지, 얼마나 열정을 갖고 회사 생활을 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회사에 돈을 잘 벌어다 주고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회사의 애사심은 성과급과 복지에서 온다는데,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것도 이것들이었다. 어쩌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내가 입사한 이후로 회사에서 이번 연도는 어렵다고 말하지 않은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있었던 커피머신과 생일선물 그리고 장기근속 포상제도와 같은 복지는 회사 차원의 원가절감이라는 이유로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무리 애사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쥐꼬리만 한 월급과 회장의 자산이 불어 가는 뉴스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애사심은 한 톨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사심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저 회사와 나는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다. 서로의 계약 관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면 되고, 아무리 수정해도 서로의 계약 관계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면 그 계약은 종료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내가 그 계약에 '을'이라는 것. 사실상 계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변경은 많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회사와 동등한 입장이 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 계약 관계에 당당히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의 길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 하나만을 아주 심혈을 기울여 만들지 말고, 여러 사다리들을 이곳저곳에 설치해놓고, 오르다가 무너지면 다른 사다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겠다.



keyword
이전 15화직장인 조직 변경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