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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08. 2022

평범함의 놀라움

"만만하지만 잠재력이 있다"

  나는 지독히도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의 의해서든 나름 모범적인 삶을 살았고, 인생의 굴곡이 그리 심한 편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아버지의 집안을 일으켜보자는 다짐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올라온 것이기에 단칸방에서 우리 가족은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 단칸방과 반지하 생활을 전전하던 우리는 아주 평범했다. 친구들 집에 가봐도 우리 가족과 비슷한 형태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집에 컴퓨터가 한 대 있거나, 하교 후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그 친구는 부유한 축에 속했다. 나는 그렇게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자라왔다. 주로 동네에서 공놀이를 하고 숨바꼭질을 했다. 숨바꼭질하다가 트럭 위에 올라가 숨느라 동네 아저씨한테 혼난 적도 있었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서 밥 먹고 있는 친구를 겨우 찾아낸 적도 있었다.  초등 고학년이 되니 PC방이 유행이었다. 이때부터는 애들과 함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식스, 리니지와 같은 게임을 즐겼다. 여느 아이가 그러하듯 코 묻은 용돈을 게임하느라 다 써버리고, 돈이 없으면 애들을 꼬셔 공놀이하러 나갔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더 평범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동안 리니지라는 RPG 게임으로 쌓아 올린 나의 명성과 자산을 해커에게 한순간에 빼앗기고, 게임 속에서 좌절한 나는 현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후부터 학교에서 평범하게 공부와 운동만 병행했다. 게임을 그만두니 성적이 제법 잘 나왔고, 중학교 3학년 졸업하기 전엔 반에서 2등도 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고, 그저 속셈학원 하나만 꾸준히 다녔음에도 성적이 꽤 나와서 나는 고등학교를 인문계로 진학하기로 했다. 그동안에 IMF라는 큰 위기 속에서 우리 가족은 한껏 위축되었고,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내리기도 했지만 나는 공부만이 답이라는 생각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로 공부와 운동만 했다. 이것들만 평균 이상만 해도 사내놈들만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먼저 나서지 않아도 내 주변으로 친구들이 알아서 모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도 무난했다. 그 시절 반항아(?)의 전유물이었던 오토바이, 담배, 술,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속셈학원, 방과 후 친구들과의 농구 모임, 시험 끝난 후 가끔 가던 노래방과 PC방이 내 고등학교 시절 동선의 전부였다. 너무나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운 좋게도 고등학교 내신성적만으로 수능 없이 1차 수시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도 평범한 공대생일 뿐이었다. 신입생 때는 고삐가 풀린 망아지였고, 나조차도 안 되겠다 싶은 시점에 군대를 가야 했다. 누구나 그렇듯 군대에서 정신 차리고 와 복학하여 학점 복구에 힘썼고, 졸업을 앞두고 영어 성적, 봉사활동, 취업스터디 등을 통해 겨우 겨우 스펙이란 것을 만들어 졸업 직전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신입사원으로 뽑아준 이 회사에 10년째 머무르고 있다. 생각해보니 자세히 관찰하면 모든 일상이 사건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삶이었다. 왜 이런 구름과 같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누구나 생각할만한 그런 평범한 목표를 잡고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엔 게임 마스터가 되는 목표, 학창 시절엔 적당히 공부하여 수도권 대학에 가겠다는 목표, 대학교 땐 대기업에 입사하겠다는 목표, 취업 이후엔 평범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목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우리 가족이 머무를 집 한 채 갖겠다는 목표 그리고 그 이후에는...? 뻔하다. 아이를 잘 키워서 스스로 독립하게 만들겠다는 목표, 우리 노후를 위해 아끼고 모으자는 목표, 오래 살기 위해 건강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을 하자는 목표, 손주를 돌보며 딸의 육아에 보탬이 되자는 목표들 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삶이 평범하다는 것은 내 기준으로 비범한 사람들에 비해 특별하지 않은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 기준의 비범함이란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이뤘거나, 본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거나,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는 내 삶이 평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껏 평범한 목표라고 잡은 것 자체가 도전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잡은 목표에 공감하고, 실행하는 와중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평범함의 놀라움'으로 본다. 평범함은 만만하지만 잠재력이 있고, 평범함이 모여 나만의 색깔이 된다. 하나의 목표로는 평범해 보일 수 있어도 이런 평범한 목표들이 여러 개 모이고, 이 목표를 달성하거나 실패하는 과정에서 우린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니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보려는 추진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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