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부터 <꿈의 해석>을 강의하고 있다. <꿈의 해석>은 정신분석에 입문하기 좋은 강의이다. 정신분석의 ABC가 거기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하나의 명제로 말하자면, ‘꿈은 소원의 성취’이며 라캉 식으로 말하자면 ‘억압된 욕망의 성취다.’
강의하느라 바쁘던 중에 길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내 강의 목록에서 ‘예지몽은 없다’는 제목을 보더니 예지몽이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말해 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이 자신의 꿈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꿈에서 냉장고를 연다. 그때 ‘펑’ 하고 소리가 나면서 연기가 발생하더니 거기에 나물 한 접시가 나타났다. 꿈속에서 그녀는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다가 깨어났다.>
그런데 그 꿈을 꾼 다음날 그녀의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꿈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것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몽이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해석에 의하면 꿈에 나타난 나물 한 접시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나물이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그 꿈은 예지몽이 분명했다. 꿈에 제사상에 올라가는 나물 한 접시가 나타나고 바로 그 다음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지 물었다. 그녀는 당연히 사이가 좋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시어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데 너는 참 대단하네.”라고 하며, 시어머니와 대로에서 다툰 적이 있다는 내 경험을 말하자 그녀는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이때다 싶어서 “시어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나 보네?” 하니, 그녀는 “뭐 다 그렇지 않나?” 하며 웃었다. 그녀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예전에 그녀가 한 말이 떠올랐지만 언급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사업을 하려는데 시어머니가 돈도 주지도 않고 돌아 가시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그녀의 꿈으로 돌아가보자. 그녀는 꿈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나물이 나타난 것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것을 알려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꿈은 평소에 그녀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 ‘소원이 성취’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예지몽이라고 생각한 것은, 너무나도 우연히, 예지몽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바로 그 다음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꿈 역시 프로이트의 말처럼 꿈은 소원의 성취이지 미래를 예견한 것이 아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그녀는 사실은 시어머니가 미웠다고 넌지지 말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래도 예지몽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그 꿈을 말해보라고 할 것이다.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준다면 그 꿈이 예지몽이 아니라 꿈 꾼 사람의 욕망이 성취된 것임을 밝혀 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