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 선생님. 대학1년 때 <전효준은 죽을 지도 모른다.> <전효준은 죽었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B는 그 생각이 20번도 더 났다고 한다.)
분석가 : 전효준이 누군가요?
B : <전효준>은 거의 친하지 않은 고등학교 때 친구입니다.
분석가 : 그 생각이 어디서 났나요?
B : 00 지하철 역 근처였어요.
분석가 : 그러면 <00역> 하면 무슨 생각이 나나요?
B : 초등학교 5학년 때가 기억나요. 거기 근처의 00 아파트에 살았어요. 그리고 그때 친구랑 통화하는데 <성준>이가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효준, 성준>, 같은 <준>인데요?’ ...그런데 그때 통화했던 친구가 <호준>이에요. 소름!! 그게 왜 지금 생각났지? <성준>이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준>이를 전혀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준, 준, 준이에요!’
B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이 호준이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성준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B는 <호준>이가 <성준>이의 나쁜 점에 대해 말하니까 거기에 동조해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준>이가 <성준>이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는 것이 다. <호준>이를 믿고 <성준>이에 대해 말했는데 <성준>이가 옆에서 다 듣고 있었고, <호준>이는 <성준>이를 바꾸어 주었던 것이다. 그때 B는 <성준>이보다 <호준>이가 더 미웠다고 한다. <호준>이에 대한 배신감이 들어서 굉장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배신감으로 인해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증상이 발생한 이유가 밝혀진다. 호준이와 통화하는데 성준이가 엿듣고 있었다는 기억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B가 엿듣는 성준이보다, 성준이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호준이가 미웠다는 사실이다. 호준이를 죽이고 싶은 만큼 미웠는데 그것은 기억이 나지 않고 엿듣는 성준이만 생각났다. ‘격리(억압)’*이 작용한 것이다. 호준이에 대한 미움은 아래로 눌러지고 호준이는 잊혀진다. 그러나 그것은 ‘전효준은 죽을지도 모른다. 전효준은 죽었다’는 것으로 변형 왜곡되어 회귀한다. 여기에는 격리(억압)된 무의식이 회귀하는 방법이 드러나 있다. <준>이라는 소리의 유사성을 따라서 회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호의 형식을 뜻하는 기호형식(signifiant)의 정신분석이다.
그리고 B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전효준>은 사실은 ‘전, 효준이가 아니라 호준’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면서 B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아졌다고 했다. B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살해충동이 의식화되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분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B에게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왜 생기는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런 생각이 앞의 증상의 이면에 있는 살해충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언급해 두려고 한다.
* 격리(억압) : 프로이트가 사용한 ‘ Verdrängung’ 을 억압이라고 번역하지만 사실은 그것의 의미는 ‘따로 떼어 보관하다’ 는 뜻이므로 ‘격리’ 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억압’ 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 격리’ 로 번역하고 ‘억압’ 을 괄호로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