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시간을 돌이킨다면 어머니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시작한다 해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 덜 당황하고 덜 아파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다 당황하는 순간순간이 오면 언제나 치트키는 '친절함'과 '미소'라는 것을 매일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불친절하고 권위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 불쾌감을 씻어내는 데 조금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제가 좀 더 친절했었으면 조금쯤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당연한 결론을 이미 알고 있지요.
출발선에서부터 무조건 ‘미워해야’ 하는 대상이었으니까요, 저는.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요. 어머님 세대에서의 며느리라는 존재에 대한 것 말이예요. 세상이 어쩌면 그리도 무섭게 낮은 자리로 며느리를 밀어 넣고 분노를 밀어 넣을 수 있었는지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건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친절함’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그래서 어머니의 그러한 순간순간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친절했는가’에 대해서는 글쎄요... ‘친절’보다는 근원적인 ‘굴종’의 포지션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니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강한 포지션이라는 것을 각성한 어느 순간, 그 굴종은 공격으로 얼굴을 바꾸었으니까요. 틀림없이 그랬네요. 초기에 '전통'으로 무장하신 어머니께 공격받던 젊고 힘 있는 제가 나이 들어 힘없는 어머니를 무섭게 노려보며 공격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던 거요.
제가 '친절'했다면 조금 다른 표정으로 공격을 했겠지요. 어머니께 받았던 그 표정을 그대로 돌려드렸으니, 그러니 '친절'하기 위해서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이라는 옵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네요.
오랜만에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서 제가 줄곧 찾아오던 자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폴란드의 옛 수도였던 크라쿠프의 올드타운은 고대와 중세의 전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금 더 가까이 오면서는 쉰들러공장과 아우슈비츠를 통해 2차 대전을 겪는 국민들의 서글픈 선택을 들려줍니다.
전쟁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패키지 통신요금을 비롯해 여러 필요한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고, 최근 시리아와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당연히 국가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튀르키예 지진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에 대한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는 택시기사가 폴란드에서 받은 첫인상이었습니다.
광활한 평야지대인 폴란드는 당연히 강대국이 탐을 내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오랫동안 나라가 사라지기도 하고 독립되었다가 다시 분할되기도 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가려진 아픔이 적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 엄혹한 전쟁의 시기를 살아냈고, 살아남았고, 애도하고, 미안해하고 있기에 많은 부분이 남겨진 나라인 것 같습니다.
무너진 바르샤바는 중세 화가의 고증을 통해 그대로 재현했다 합니다.
크라쿠프는 바벨성에서 통치하던 왕조시절부터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전설이라는 것들은 필시 모두 다 전쟁 이야기입니다.
훼파시킨 곳에 다시 이전의 유적을 복원하는 마음.
훼파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나 훼파시킨 자리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알지 못해서 다시 세워보는 그 마음을 천천히 이해하게 됩니다.
어머니도 저도 훼파시킨 틀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해도 또다시 무너뜨려야 할 이야기들을 쌓게 되겠지요.
그럼에도 이젠 압니다.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평안하세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조금은 치열하게 싸워봐요.
어머니는 욕하지 마시고, 저는 따지지 않고요.
조금은 친절해지려고 애쓰면서 이야기를 나눠봐요.
다시 전쟁을 쌓게 되더라도 저는 자꾸만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새로 써보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는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쉰들러박물관의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괴롭고 슬펐으므로.
저는 전시된 유물을 보는 것만으로 슬퍼하지만 어머니는 그 시기를 살아내셨으니, 정말로 살아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다음 세대의 전쟁을 어머니는 이해 못 하셨겠다는 것을 이제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머니를 이기도록 어머니께서 최선을 다 해서 져 주시는 축복을 저에게 주셨다는 것도 함께 이해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형태를 달리하며 다가오는 전쟁을 치러낼 다음 세대들에게도 기어이 살아남으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