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치우슈코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독립전쟁에도 참여해 활약을 인정받아 미국 국적도 받게 되었으나 이후 외압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조국 폴란드를 위해 귀국해 러시아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운 폴란드의 국민영웅이라고 한다. 이 언덕은 국민 성금을 모아 남녀노소 심지어 관광을 온 외지인까지 힘을 합쳐서 쌓은 언덕이라고 한다.
열 시에 문을 연다는 매표소는 열 시 삼십 분이 넘도록 닫혀있었다. 조금 더 늦은 시간까지 기다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사진은 인터넷에 더 잘 나와있을 테니 나는 오르고 내리는 길의 풍경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돌아서 내려왔다.
아름드리나무 밑동을 남겨서 자연친화적인 쓰레기통을 만들어놓은 자리가 있었고, 그 옆으로
설강화 꽃 몽오리가 땅속에서 하얀 귀걸이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드넓은 평야지대에 불쑥 나타나는 언덕길을 오르내릴 때 아침 운동 중인 마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산책 나온 개 한 마리가 나를 너무 궁금해해서 자꾸만 다가왔고 하네스를 잡아당기는 그의 주인도 나도 그저 눈웃음을 나누며 굿바이 인사를 했다. 외진 곳에서 오르락내리락 달리기를 하고 있는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을 때도 우리는 서로 환하게 웃는 인사를 하며 길을 달리했다.
오늘은 지금까지 여행 중 제일 많이 걷는 날로 남겨두기 위해 돌아오는 길도 시내 쪽으로 노선을 달리해서 걸었다.
4시까지만 문을 연다는 팝업카페에서 핸드드립커피를 주문했다.
컴퓨터를 열고 워드프로세서를 작동시키면 어느 장소에서든 사람들의 시선이 넉넉해진다. 좁은 카페 작은 식탁 한쪽 구석을 쓰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에도 따뜻한 시선이 전해졌다. 망고잼이 발라진 빵과 잘 어우러지는 커피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향기를 지난 맛이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혼자 다니기 편해서 내향형인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제대로 여행같다.
왜 꼭 폴란드여야 하느냐고 지인들은 물었다.
국내 여행지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 한 두 단어에도 떠오르는 사람과 사연들이 너무나 많아서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렵다고, 그냥 잠시만 나를 부르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 딸과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이해를 해 주었다.
휴양지도 아닌 곳,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부담도 없는 곳,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휘리릭 바깥 산책을 나가서도 온전히 나의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았다. 2월의 여행지로 추천되지 않는 곳. 여행에 대한 선망은 없어도 인터넷과 교통 인프라는 잘 갖추어진 곳. 우크라이나와 붙어있는 나라라는 것. 그게 내가 폴란드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지만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았다.
건축가 형제가 각자의 탑을 쌓다가 동생의 탑이 더 훌륭해 보여서 질투심에 눈이 먼 형이 동생을 죽이고 죄책감으로 자신도 탑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을 가진 성모승천성당의 쌍둥이탑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생각나게도 한다.
높은 탑 꼭대기에서는 매 시 정각에 종소리가 울리고 곧이어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전해오는 중세 전설에 의하면 이 도시에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도시 문이 닫히고 열리는 것을 알리고 화재를 감시하기도 하고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알리는 나팔수가 있었다. 1241년 몽고(타타르)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팔수가 나팔을 불기 시작했는데 몽고군의 화살이 그의 목을 관통했기 때문에 나팔수는 그 자리에서 죽고 나팔 소리는 멈추고 말았다. 그 후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매시 정각이 되면 트럼펫이 울리다가 갑자기 소리를 멈추어버리는 연주가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글로 옮길 수 있는 사연들은 차라리 아름답다.
글로 옮길 수 없는 수많은 전쟁과 배반의 역사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기억을 추슬러 추억을 하거나 경계로 삼아 후대에게 전하는 일을 매일 매 시간마다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는 말의 의미가 두텁게 전해지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나치에 부역했던 사람들을 가졌던 역사만큼은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도 공존하고 있으니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는 못하겠다.
선하기만 하고 바르기만 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선해지려 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애쓰는 나라, 그런 나라를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