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 난쟁이들 찾기

갑자기 '무의식'을 만나도 계속되는 '오늘의 산책'

by 미 지

7~8년 전 가정과 직장에서 동시에 나의 일상이 바닥을 쳤다.


보호관찰 중인 학생이 우리 반 아이 한 명을 데리고 가출을 해서 아이 할머니와 함께 찾으러 다니던 일은 가벼운 편에 속했다.

일반적이지는 않은 아빠의 성향에 마음의 병이 들어버린 일가족을 매일 상대해야 했다. 비가 오는 습한 날이나 겨울이 깊어지는 시기가 되면 깊은 우울에 빠지는 아이 엄마가 하교 후 귀가한 아이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아 아이가 문 밖에서 울며 엄마를 부르다 발길을 돌려 전철과 버스를 타고 먼 곳까지 갔다가 발견된 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은 학교 쪽이었는데 오히려 그분이 학교를 신고해서 경찰의 방문을 받은 일도 있었다. 경찰관도 그저 이 지역에서 좀 심각하신 분이라는 말을 해 줄 뿐이었고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경찰도 학교도 주민센터도 사회복지센터도 아무 데도 없었다. 매일 우는 아이에게 '살아남아라!' 응원밖엔 해 줄 게 없었다. 양친이 밥을 해 주고 때리지 않고 옷을 사 입혀주는 가정의 아이들을 울게 만드는 (말로도 글로도 옮길 수 없는) 심각한 일 때문에 아동보호센터에 신고하면 해결되는 일 같은 것은 매정하지만 없다. 아직까지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니께서 암 수술을 받으신 후 남편과 시어머니의 분노는 전부 다 나에게 향했고, '요즘 며느리들이 희생을 안 하려고 해서 예전에 없던 일이 생긴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듣는 것으로 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멈추어버린 것도, 친정 부모님의 불화가 복구될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달아서 별거를 시작하신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학교를 옮겼지만 여전히 불화했고 소동은 그치지 않았다. 언젠가 그만 둘 직장이지만 이겨도 아프고 져도 아픈 싸움을 하지는 않겠다는 선언을 했었고, 안식년을 보냈고, 더 할 수 없이 좋은 때에 퇴직을 했다.

그 시기에 나는 스캇 펙 박사의 '거짓의 사람들'과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깊이 읽으며 여러 구절을 노트에 적으며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답을 구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삶은 고해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로 시작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서문에 더 할 수 없이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끔 손메모도 해야 할 듯했기에 책꽂이에 꽂혀있던 노트 중 가장 가벼운 노트 한 권을 꺼내서 가지고 왔다.

어제 크라쿠프에서 브로츠와프로 기차를 타고 오는 세 시간의 이동 중 좌석 등받이 테이블을 펼치고 기록을 하기 위해 노트를 펼쳤을 때 거기에는 그 시절 내가 읽으며 메모를 해 둔 '아직도 가야 할 길' 책의 구절들이 듬성듬성 적혀있었다.


"삶은 고해苦海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


그랬다. 나는 이 서문과 서평에 전적으로 위로를 받았었고, 어떻게든 어려운 시기를 넘겨보내되 희생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 시간들보냈었다. 어느새 잊고 있었던 그 글들이 지금 불쑥 나타나서 이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청하고 있었다.


익숙한 것에 침묵하고 새로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라고, 사실과 이성을 초조하게 좇지 않고 불확실성과 신비, 의문 속에 머물러 알고자 하는 욕구를 억제하는 능력인 소극적 수용능력을 다듬어서 내가 직면한 문제를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권하는 내용이 내 노트의 첫 구절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에 대한 부정은 익숙한 것들을 쓰러뜨려버린다.
소극적인 수용능력은 의지적이고 공격적이기까지 한 행위다.
치료자가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 공격을 요구한다.
마음은 가라앉히고, 알지 못하는 것에 순응하며 기존의 자기를 한쪽으로 밀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자가 강력한 영향을 견뎌내고 타인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때때로 기진맥진할 정도로 힘든 치료작업의 한 가지 본질이다.


너무나 힘들어서 답을 모르던, 외롭고 힘들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동행을 하고 있다.


답은 여전히 모를 것이다. '소극적 수용 능력'을 다듬지 못해서 순간순가 불쑥 튀어나오는 '나'를 다듬을 수 없어서 치료자로서의 수련을 종료선언했으니까.


무의식은 언제나 의식보다 한걸음 앞서있다.
그래서 자신이 옳은 일을 하는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의지가 부단히 선을 지향하면, 무엇이 선인지 애매할 때 충분히 고통받을 마음이 있으면 무의식은 언제나 의식보다 한걸음 앞에서 옳은 방향을 향해 갈 것이다.


대단한 것을 깨닫기 위해 여행을 떠나오지는 않았으니 나는 또 오늘의 산책을 해 본다.

브로츠와프 광장을 걷는 동안 숨어있는 난쟁이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플라잉타이거 매장에 며칠 전 크라쿠프 관공서 뒤편에서 보았던 전통농가주택 상징물 모형의 오브제가 걸려있었다. 같은 매장이더라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물건들이 준비되기는 해야겠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장바구니 물가는 이곳이 틀림없이 싼 것 같다. 우유와 오렌지주스 1리터짜리, 돼지고기 한 팩, 딸기 한 팩, 피에로기 한 팩, 구워 먹는 치즈 한 팩, 샐러드 야채까지 모두 합해서 2만 4천 원이 나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새콤달콤 딸기는 오늘부터 가는 날까지 하루 한 팩씩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그리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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