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되어 있음의 지혜

칼릴 지브란과 함께하는 산책

by 미 지

남편이 아버지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해서 언니가 함께 가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지난 가을부터 나는 토요일 오전에 아버지와 짧은 드라이브를 하고 점심식사를 함께 해 오고 있다.


한 달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릴 때 아버지도 물론 기뻐하셨다. 엄마가 그러신 것처럼. '혼자하는 해외여행은 지혜롭지 않으면 그리고 건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오라'라고, '아프리카도 혼자 다녀왔으니까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무척 자랑스러워하시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왜 이서방이 함께 가지 않는가?' 물으실 때, '바쁜 사람을 한 달 동안이나 재미없는데 끌고 다니면서 구박할 수는 없잖아요'하고 말씀드릴 때는 파안대소하셨다.


자주 아버지의 점심을 챙겨주신다는 이웃과 매일 전화를 주신다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 연세에도 혼자 끼니를 챙겨드시고 산책을 다니시는 일 정도는 혼자서 하실 수 있으니 살던 거처를 옮겨 새삼스런 스트레스를 겪으시는 것보다는 그리 지내시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 방의 벽에는 삼 남매에게 당부하는 내용, 드시는 약 스케줄, 이웃의 증인 서명을 받은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 등등 그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배운 그 연배의 필수 문서 여러 장이 붙어있다.


차량 진입도 주차도 힘든 구시가지 골목이라서 내가 혼자 가면 힘들다고 항상 남편이 동행을 해 주었는데, 지난 토요일에 남편이 장인어른과 처형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하고 왔다고 언니가 전해주었다.


남편은 나에게 '잘 다니고 있나?' 문자 한 통이 전부였지만 그도 나도 이젠 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정신적 성장이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 고독한 여행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캇펙 박사의 말은 진리다!)


깊은 홀로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도 남편도 아버지도 언니도 동생도 한 계단 정도 올라서는 '온유'를 배웠다.


분리되어 있음의 지혜 (일심동체가 아닌 이심이체)

칼릴 지브란

그러나 당신 부부 사이에는 빈 공간을 두어서,
당신들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도록 하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포개어지지는 마라.
당신 부부 영혼들의 해변 사이에는 저 움직이는 바다가 오히려 있도록 하라.
각각의 잔을 채워라. 그러나 한 개의 잔으로 마시지는 마라.
서로 당신의 빵을 주어라. 그러나 같은 덩어리의 빵을 먹지는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라. 그러나 각각 홀로 있어라.
현악기의 줄들이 같은 음악을 울릴지라도 서로 떨어져 홀로 있듯이.
당신 마음을 주어라. 그러나 상대방 고유의 세게 속으로는 침범하지 마라.
생명의 손길만이 당신의 심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붙어 서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은 떨어져 있어야 하며,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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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로고에는 'schindler'라는 회사명이 써있다. 숙소 호스트가 리프트를 타고 2층에서 내리라고 안내를 해 줄 때 여기는 '엘리베이터'라는 말보다 '리프트'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다가 'schindler lift'와 'shindler's list'가 절묘하게 겹쳐지는 이름이라는 생각까지 닿았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Schindler Brand Lift'라는 구문을 은유적 게임이나 말장난의 일부로 'Schindler's Lift'로 언급한 보스니아작가의 소설에 스위스의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Schindler사가 소송을 제기한 문학사적인 사건이 있다고 한다.


산책을 나갈 때 내 숙소가 2층이니까 한 층만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걸어내려가다 당황했다. 여긴 0층부터 시작이었지... 괜히 억울해진 나는 그다음부터는 걸어서 오르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꼭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탄다. 오늘 오후 산책을 나갈 때 동양 레이디와 같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듯 복도에서 만난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한 번 쳐다보다 씩씩하게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브로츠와프 중앙역 뒤쪽에 있는 쇼핑센터에 갔다.

넓디넓은 쇼핑몰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1층의 휴게공간 구조물이 이색적으로 예쁘게 보였다.

기차역사 안에서 기타를 들고 연주를 하는 버스커와 그에게 다가가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행인의 사진 한 장을 멀리서 찍고 다가가서 지갑에 있던 동전 네다섯 개를 건넸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게 몸을 돌려 인사를 했다.


중앙역 건물은 비에 젖었어도 멋진 황토빛깔로 우뚝 서서는 정갈한 모양새로 출입문과 창문들을 줄 세우고 있다. 안내판 위의 난쟁이가 반가워서 사진을 찍고 그다지 번잡하지 않은 열차역과 쇼핑몰 산책을 마쳤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들어오고 술은 마시지 않는 세상 재미없는 여행이다.


창문 밖의 고요를 마주하면서 저절로 들리는 이웃의 소음이 우리 집에서 들리던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곧 부서지고 새로 짓게 될 창 밖의 빈 건물 깨진 유리창 배경음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해 져서 어두워질 때까지 그저 그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스르륵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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