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유대인의 공원묘지

by 미 지

구이용 치즈를 사 왔다. 주방에서 치즈를 굽기 위해 인덕션을 켜고 예열된 프라이팬에 치즈를 올렸다. 치즈가 타려고 해서 온도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방안에 치즈 연기가 가득 찼다. 화재감지 센서가 울리고 천정에서 물이 쏟아지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심한 연기였다. 인덕션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옮겼어도 연기는 여전했다.

주방에는 환기시스템이 없었다.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 모락모락 연기가 빠져나갔다. 누군가 화재신고를 하지 않을까 할 정도의 연기가 창 밖으로 밀려나갔다. 겁이 조금 났고, 아마도 이 광경을 어디선가 보고 있을 호스트가 곧 연락을 해 올 것만 같았다.

결론은... 십여분이 지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연기는 사라졌고, 치즈 냄새도 사라졌고, 호스트에게서 연락도 오지 않았다. 눌어붙은 프라이팬도 말끔하게 닦였다.

지하 식당 홀 안에 치즈연기가 가득 찼는데 생각보다 냄새는 맵지 않았던 스위스의 치즈퐁듀 식당이 생각났다. 숯불구이 삼겹살 연기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네, 이 치즈 타는 냄새...


다음날에는 감자를 삶다가 같은 일이 생겼다. 센 불로 감자를 삶다가 불조절을 깜빡해서 그만 감자 구이가 되어버렸다. 감자 타는 냄새는 치즈 타는 냄새보다 심했다. 이케아 스텐 냄비가 새카맣게 타버려서 아무리 닦는다 해도 검댕이를 제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냄비를 변상하겠다고 호스트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은 상태였다.

싱크대 서랍에 있던 스테인리스용 세제를 꺼내서 원액을 뿌려두었다가 닦았다. 그것도 원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해졌고 호스트에게 연락할 일도 없어졌다.


더러움이 심해진 옷을 샤워실에서 빨았다. 이 아파트 옵션에는 세탁기가 없었지만 호텔에서도 가벼운 손빨래 정도는 해 입고 다니고 있다. 배수구 물이 천천히 빠졌기 때문에 더러움이 묻은 비눗물이 바닥에 고였다. 샤워실 밖으로 물이 넘칠까 염려가 되어 물을 잠갔다. 배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것 정도야 살림 좀 해본 나한테는 일도 아니었다. 장식처럼 덮여있는 기다란 배수구 덮개를 열고 배수구 거름망을 찾아 청소하면 그만이었다. 샤워실 바닥은 내가 처음 들어올 때보다 훨씬 깨끗해져 버렸다.


옛 유대인공원묘지를 갔다.

브로츠와프가 독일령이었을 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살해된 브로츠와프 유대인 공동체 대표자들의 매장지라고 한다. 여기에 묻힌 사람들 중에는 저명한 과학자, 경제학자, 랍비들이 있다.


묘지예술박물관이라는 관광정보안내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묘비, 무덤, 캐노피 등 특색 있고 아름다운 무덤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례식은 1942년에 거행되었다고 한다.


독일은 이 묘지 또한 2차 대전의 주요 폭격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폭격으로 인해 무너지고 깨진 석축들과 묘비의 총알자국들을 보며 살아있을 때도, 돌아간 뒤에도 원인 모를 증오의 대상으로 핍박받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 무거운 상념에 젖는다.


브로츠와프 궁전으로 가는 길에 궁전보다 더 웅장한 법원 건물이 있다. 넓고 넓은 광장에 여학생 세 명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행인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경주를 시작했다. 경주가 시작된 듯 두 명이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광장을 왕복했다.

이렇게 넓은 광장이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한없이 한적하다.


궁전은 월요일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커다란 나무들마다 새둥지들이 여러 개씩 층을 내어 들어서있었고 길가에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예정했던 여행 절반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천천히 내가 이 여행의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을 다시 살펴본다.

자신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통합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 어린 시절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이 현재와 미래만 이야기한다면 아직 통합되고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중요한 문제가 적어도 한 가지는 있으므로 이 문제를 끄집어내야만 완전한 치유가 가능하다.

- 어린 시절과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나 어떤 위기로 인해 '지금 여기의 삶'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 미래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환상, 희망 관련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여행을 기록하면서 줄곧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가며 이야기를 적고 있다. 미래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스캇 펙 박사의 조언에 따라 내 기록을 통해 스스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직 통합되고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기록할 것이 없는 것 같고,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나 어떤 위기로 인해 <지금 여기의 삶>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도 적은 것 같으니 절대적으로 언급량이 적은 미래의 '환상'이나 '희망'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 차차 말하기를 시작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면의 발견에 다다르고 있다.


나는 의식적으로 환상이나 희망과 관련된 언급은 자꾸 밀어서 감추어두고 꺼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자신이 없거나 실현가능성이 없거나. 아마도 둘 다 일 것이다.


나와 남편의 퇴직. 돌아가신 시어머니, 엄마의 치매와 스스로 당신 생의 마무리를 천천히 준비하시는 아버지가 최근의 나에게 가장 큰 주제이다. 한없이 희망찬 것들만 이야기하기에는 이제 주변과 나 스스로의 속사정이 아주 많이 무거워진 탓이다.


그러한 낱낱의 사정을 속속들이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이렇게 무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런 잠시의 시간은 어쩐지 꼭 필요한 절차이고, 그리 해도 괜찮을 것 같으니 잠시만 더 이대로의 마음으로 한동안을 보내는 것으로 한다.

기어이 다가 올 어두운 미래에 대해 잠시만 서글퍼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나갈수록 대체로 어둡지만은 않은 그다음의 길이 천천히 열리기까지 내버려 둔 채로 기다리기로 한다.


대지를 믿고, 사람들을 믿고, 남은 시간도 여전하게 넉넉하게 감당해 갈 나를 믿고. 그것이 지금의 내가 이 여행지에서 말할 수 있는 '미래' 니까. 인생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keyword
이전 17화3월, 브로츠와프 눈길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