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묶음을 놓는 마음

by 미 지

바르샤바 센트럴 주변 건물에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벽에 있는 비문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군사지리 연구소의 장교, 하사관, 직원을 추모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소폿 역에 서 있던 동상은 이 지역의 정치가이며 사회운동가인 교수 바르토체프스키라고 한다. 2015년 사망했다고 하는데 소폿 관광안내 홈페이지에도 그의 동상 오른손에는 꽃이 들려있다.


꽃 한 묶음이 무슨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마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마음과 마음들이 놓이고 있는 장소, 꽃다발을 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받는 나 같은 행인이 있다.


토익이나 토플, 한국어능력 시험 같은 외국어 교재 속에 나오는 예문은 대부분 바르고 정확한 내용들을 담게 된다.

어릴 때 학원에서 받은 영어 시험 대비 교재 속에 '대중교통을 탈 때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그러나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예시문이 있었다. 고연령 어르신들이나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석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 '의무'와 '권리' 사이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문장이었다.


'의무'와 '권리' 사이.


한때는 장애학생들에게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상생활교육을 실시했던 적이 있었다. 안전조끼를 입고 '사회적응활동 중'이라는 패찰을 달고 다녔다.

지금이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장애학생의 돌발행동에 대해 이해를 해 주는 편이겠지만 (어림없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최소한 '무관심'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아직도 많다.) 그 시절엔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증의 정서장애 학생들이 지하철을 타면 빈자리가 있으면 달려가서 앉고 자리가 없으면 빈 공간의 바닥에 주저앉아버려서 당황하는 순간들이 제법 많았기에 학교를 나가서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모두가 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어리고 건강한 아이가 지하철 의자에 앉아있으면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다가와서 들고 있던 지팡이로 그 아이 발 끝을 툭툭 쳤다. 아이의 지능이나 정서 같은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야단맞던 아이가 바짝 약이 올라 소리를 버럭 지르며 울면 '왜 저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돌아다니느냐'라고 야단이 돌아왔다.


그때 그런 고민을 했었다. 고령자와 약자 사이 권리와 의무는 어디쯤에 답이 있을까?


우리가 받은 것은 분명 공격이고 상처였지만 그 공격을 주신 분도 상처 투성이였다. 나는 일 년에 서너 번 이런 일을 겪으면서, 게다가 교육활동이라는 제삼자의 명분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을 매번 매일 겪고 있을 우리 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을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아플까?


내가 많은 고민 끝에 했어야 할 말을 누군가에게 너무 쉽게 강요받게 되었을 때도 저 문장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시어머니와 불화할 때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신 가사도우미 이모님께서(지금이라면 간병인을 모시겠지만 그때는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를 신청할 수 있는 가정요양시스템이 없었다) 나를 야단치셨다.

'환자분인데 그런 것도 이해 못 해 드리면 어떻게 해?'

그런 것 같았다. 환자분을 이해 못 해서 섭섭해하는 나는 어쩐지 부족한 것 같았고, 그것을 야단치시는 분이시라면 반드시 그분께 환자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비법이 있을 테니 꼭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분을 대했다.


사흘을 일 하시고 그 이모님이 화를 내셨다.

'이상한 분이야. 내가 그렇게 잘해 주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

내게 해야 할 말을 가르쳐주셔야 할 분이라서 방법을 배우려고 기다리고 있던 내게 그분은 화를 내며 그렇게 말하시고 가셔서는 다시 오지 않으셨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사흘 전에 나를 야단치시던 분이 왜 지금 그때 내가 했던 말을 하시며 나가버리시는 걸까? 과거와 미래가 뒤바뀐 모양새에 많이 혼란스러웠었다.

한 달 사이에 세 분의 이모님이 바뀌었는데 하나같이 그렇게 오셨다가 그렇게 가셨다.

나를 야단치시던 그분들에게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많았었지만 그냥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고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인간에게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양심적으로 자기 의심과 자기 모색을 통해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첫째 것은 거만한 방법으로 가장 흔하게는 부모, 부부, 선생 등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이 길은 성공적이지도 못하고 성장보다는 적개심을,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을 일으킨다. 둘째 것은 겸손한 길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이것은 자아를 순수하게 확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보다 성공적인 길이며 내 경험으로 보아 이 길은 절대로 파괴적이지 않다.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사랑이 많은 쪽이 손해를 봐야죠.'

다니던 교회에 물었을 때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냥, 사랑이 적은 쪽을 택했고 조금 편해졌다.


조금 편해진 덕으로 나는 세상에 나가기 위해 힘든 애를 쓰는 우리 반 아이들과 그 아이의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잃었다.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말고 차가운 세상에서 견뎌내세요. 세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데 포기하시면 안 돼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것이 답일까? 정말 답이 있을까?


권리와 의무 사이.

충고와 비판 사이.

용서와 기억 사이.


그다음부터 그런 고민에 빠져버려서는 여전히 답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특수교사'로서는 최악의 노선을 선택하게 되었으니 오늘도 이리 먼 곳까지 와서 어디서부터가 용서일지, 어디까지가 기억일지 영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래서 영 모를 용서와 기억 사이 어딘가에 꽃 한 묶음을 놓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keyword
이전 24화예전에 어느 소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