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세우기

by 미 지

바르샤바 궁전을 산책했다. 가는 길에 무명용사의 기념탑을 지나는데 관악기를 든 세 명의 연주자들이 처음 듣는 선율이지만 다음 선율 진행이 예상되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군악대의 음악 같았다. 멀리서 사진을 찍고 동전 하나를 모금함에 넣으면서 지나갔다.


스트릿 댄스를 하고 있는 젊고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이 군무를 맞추고 있는 음악이 한국음악이어서 더 예뻤다. 네이버 음악 검색을 해서 제목을 알아냈다. 에이티즈의 THANXX.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더 격려받았으므로 가까이 서서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다.

센트럴에 있는 까르푸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키가 나보다 약간 커서 비슷한 눈높이인 그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말을 했는데 그는 못 알아들었다. '싸우스 꼬레아'라고 다시 말했으나 여전히 못 알아들으며 중국말도 하고 일본말도 하면서 그는 나와 이야기할 단서를 찾고 싶어 했다. 난 그냥 미소 지으며 '쏘리' 하고 다음 칸으로 갔다. 다음 칸에서 그가 다시 다가와서 '폴란드 사람이냐?'라고 또 물었다. '아니, 코리아!'라고 말을 하자 그제야 '아하, 한국! 안녕하십니까? 나, 저펜, 자페니스!' 하고 말하며 반색을 했다. 나도 조금 반가웠으므로 '아, 일본이요? 반갑습니다!' 하고 정말 반가운 미소와 함께 머리를 숙이는 한국식 인사를 하고 다음 칸으로 갔다.

다음 칸에서 그는 또 다가와서 '무슨 일로 왔느냐?' 하고 물었고 난 '휴가 보내러 한 달 와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도 휴가차 왔는데 우크라이나에 들렀다가 온 거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라면 혹시 봉사자로 온 건지?' 내가 되물었고 그는 강하게 부정하며 휴가차 왔다고 다시 말했다.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좋은 여행 하시라'고 인사하고 나는 다시 다음 칸으로 갔다.


우연히 만난 동양사람에게 반갑게 말을 걸어오던 그에게도 나처럼 멀리 길을 떠나서 찾고 싶은 영혼의 곤고함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인연으로 이 먼 땅에서 옷깃을 스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또 다른 상념이나 또 다른 답을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묵언수행처럼 머물기로 작정한 한 달의 기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상담공부를 할 때 내 관심을 끈 것은 '가족치료'였다. 특히 3대까지 올라가는 가족과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가족 세우기'라는 말은 무척 관심이 가는 단어였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화해를 하는가?' '돌아가신 조부모님과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를 하라는 것인가?' 하고 물었다. 교수님은 대리가족을 통한 집단치료 형식의 해결중심적 단기치료 모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했다.

가족 세우기 치료는 독일의 가족치료사 헬링거(Hellinger)가 시작한 가족상담의 한 모델이다. 전통적인 가족치료의 모델과는 달리 전체 가족을 대상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가족을 통한 집단치료 형식의 해결중심적 단기치료 모델로 발전되어오고 있다.

가족 세우기에서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은 개인이 어떤 가족 안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 개인의 문제와 갈등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족이란 자신이 원래부터 속해 있던 어린 시절의 가족과 나중에 배우자와 함께 이룬 가족 모두 포함된다. 모든 사람은 가족이라는 체계의 일부가 되어 가족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깊은 관계성은 다른 가족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영향을 받고, 또한 관여하게 된다. 가족구성원이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든지 혹은 의식을 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다른 가족구성원의 삶과 그의 문제에 얽히게 된다.

헬링거는 가족 세우기 작업을 통하여 가족 안에 흐르고 있는 가족의 역동을 발견하고 깨닫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가족 세우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원가족과 그의 가족사를 파악하여 가족 안에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가족 안에는 질서, 애착, 주고받음의 공평성이라는 원칙을 통하여 가족구성원은 누구든지 가족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가족 중에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 운명에 빠져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불행한 부부관계 속에서 늘 외롭고 슬픈 삶을 살았던 어머니가 있는 딸이 결혼을 하고서는 마치 어머니의 불행한 운명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불행한 운명과 얽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얽힌 관계에서 풀려날 수 있다.

가족 세우기는 트라우마를 가진 가족들이 가족의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데 깊은 통찰과 가능성을 제공한다. 기존의 가족상담 모델들이 가족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와 의사소통 차원에서 접근한 반면, 가족 세우기는 다세대적 관점에서 가족 내 세대 전수되는 역기능 패턴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가족치료의 많은 이론과 기법들 가운데 나는 이 '가족 세우기' 모델이 가장 이해하기가 쉬웠다.


할머니들의 세대로 올라가면 여성들에게 한없이 가혹했던 가부장적인 시대와 지독한 가난이 만든 트라우마가 있었겠지만 전쟁이 훑고 지나가는 시기에 예민한 십 대를 맞이해 기구한 당신들의 이야기를 쌓기 시작한 어머니들의 세대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영향을 받고 말았던 듯하다. 대부분 건강한 회복력과 생활력으로 이겨낸 것 같았지만 어머니들과의 기억들을 천천히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내 삶의 곳곳으로 파고들었던 어려움들도 결국엔 그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잔재였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게 된다.


고통스러운 무언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나의 부모를 다시 만나야 한다.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감정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준다. 가족에게서 계속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해서 그것이 가족발달을 방해하는 경우 '대물림 끊기' 작업이 필요하다.


엄마는 자주 '훠이훠이' 날아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서 갈 수 없다고, 남편과 자식들이 가져다주는 돈이 적다고 불행해하셨다. 자주 전쟁 이야기를 하셨으므로 엄마가 전쟁의 최대 피해자처럼 느껴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돈을 엄마에게 드렸다. 우리 가족이 다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위로해드리고 싶었지만 엄마의 불행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가족들이 저마다 조금씩 고통받고 지내면서도 그건 그저 세상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불행감은 줄어들지 않은 채 가족관계의 복잡함 속에 스며들고 복제되어서는 새로 태어나는 엄마의 손자 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가족들에 비해 판단이 조금 빨랐고, 엄마에게는 아무리 많은 돈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렇게 가져다 드리는 돈이 엄마를 더 많이 병들게 하는 것 같으니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멈추었다. 가족들에게 매정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미 엄마에게 드린 돈의 액수로는 내가 가장 많았으므로 가족들도 그냥 납득해 주었다. 필요할 때마다 엄마에게 위로가 되는 봉투를 전해주던 내가 발길을 끊자 가장 큰 수입원이 끊긴 엄마는 아버지와 엄청나게 불화했고 마침내 두 분의 별거가 시작되었다.


오래도록 가책을 느꼈지만 그것이 스캇펙 박사의 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그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경우도 똑같았다.

서어머니의 신경쇠약도 결혼시켜 일가를 이룬 아들과 딸과 손자와 손녀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살아남는 일이 우선이었던 시대에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던 예민한 성정의 아이에게 심긴 그것 또한 전쟁이 준 트라우마였다.


출근을 하고 돌아온 어느 토요일, 모처럼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신 할머니와 단 둘이 처음으로 한 나절을 지낸 아들이 눈을 깜박거리는 틱증상을 보였다. 아침에 활기차게 돌아다니던 네 살짜리 아이가 다섯 시간 만에 틱증상을 보이게 된 건 아이가 걸을 때마다 따라다니시면서 '무슨 걸음이 이리 빠르나?' '너 왜 할미 늙었다 하나?' '그거 아까 치워놨는데 언제 꺼냈나?' '니 엄마도 독하지. 널 이리 두고 어떻게 회사를 가나?' '너는 좋겠다. 좋은 아빠가 장난감 많이 사줘서'.... 그런 말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내가 퇴근해서 점심준비를 하는 동안 시어머니께서 그 말들을 계속해서 리플레이해 주셨으니까.

그리고도 십여 년을 더 어머니와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고 또 어머니를 돌보아드리던 다른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선생'이라서 어머니께서 나를 조금 불편해하셨던 것도 오랜 기간을 떨어져 지낼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어머니께 결별 선언을 하던 때에도 성경처럼 스캇 펙 박사의 책 구절을 읽고 또 읽었었다. 내 분노의 표출 방법이 잘 조정되지 못해서 서툴러도, 그래서 그 결과가 불행해진다고 해도 해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가장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결정에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그가 말하고 있었으므로.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 있게 칭찬하고, 지각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 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지각 있다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적당한 때에 주지 않는 것이 적당치 않은 때에 주는 것보다 더 인정을 베푸는 것이라는 점을 배워야 했다. 또 독립성을 길러 주는 것이 돌보는 일보다 더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도 배워야 했다.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욕구와 화나는 점 그리고 분노와 기대치를 표현하는 것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하며, 사랑에는 감싸 주고 자기감정을 숨기는 것만큼 노골적으로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고통스러워도 나의 부모를 다시 만나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과 불행의 괴로움의 근원>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의 마음에 집중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 나를 위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나의 부모님도 그 부모님을 다시 만나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에 대해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그분들의 이야기이다.


내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심스러웠던 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내 엄마와 시어머니의 불행감이 속속들이 스며들어가고 있었던 내 아들과 딸들에 대한 것이었다.


내 엄마에게서 받은 좋았던 것들과 나빴던 것들은 내 피로 전해지고 있었고 시어머니에게서 전해진 좋았던 것들과 나빴던 것들은 남편의 피로 전해지고 있었다.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아이들이 그냥 그 출발선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나가도록 해도 충분할 테지만 단지 내가 양쪽 집안의 '불행감'에 더 많이 집중을 해 왔던 연유로 인해 그 '불행감'이 더 큰 비중으로 아들과 딸들에게로 흘러가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세워온 나의 가족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세워가게 될 나의 가족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엄마가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해 준 건강, 호기심, 눈치, 돈, 용기 이런 것들도 다 모래성같이 무너지게 될 것들이다. 이 부끄러움도 같이 무너지게 될 것들의 목록에 들어간다. 그래서 자꾸만 이렇게 재미없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남기게 되는 곳이 이곳 바르샤바라서, 무너지고 다시 써 가는 역사를 가진 장소라서 조금의 위로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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