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노프 궁전

by 미 지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 빌라노프 궁전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화창했다. 버스를 탄 뒤 바깥에 있는 발매기에서 체크카드로 산 티켓을 버스의 검표기에 넣었는데 딸가닥 소리만 나고 날짜와 시간이 찍히질 않았다. 자리에 앉아있다가 아무래도 탑승 시간이 찍히지 않은 티켓은 문제가 될 것 같았기에 '내 티켓이 블랭크라서, 잠깐만' 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귀찮게 하며 검표기로 손을 뻗어 다시 체킹을 해 보았다. 티켓은 여전히 깨끗하게 나왔다. 이번에는 마그네틱선이 뒤로 가게 표를 뒤집어서 다시 한번 기계 안에 넣으니 그제야 시간이 찍혀서 나왔다.

코에 작은 피어싱을 한 옆자리의 젊은 여성이 지그시 웃으며 내가 체킹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난 고맙다고 말하며 그녀의 눈을 맞추며 함께 웃었다.


TV리모컨을 조작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한 방향. 내가 집에서 쓰던 리모컨은 채널을 끝까지 올리고 나면 그 방향 버튼이 무한 순환되면서 다음 채널로 넘어갔는데 이곳에서 묵는 다섯 곳의 숙소에 있는 TV 리모컨 채널 버튼은 음량버튼 같아서 채널 끝까지 간 다음 다른 채널을 탐색하려면 반대편 버튼을 눌러서 차례차례 다시 내려오며 탐색하게 되어있다. 일단 적응하고 난 뒤에는 아무 문제도 아닌데 집에서 쓰던 방식이 익숙했던 나에겐 어쩐지 번거롭게 느껴지던 첫날이 있었다. 웬만해서는 TV 채널을 안 돌리고 스마트폰을 미러링 해서 본다. 와이파이면 다 되는 세상 편한 시스템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한 정류소에서 휠체어를 탄 어르신 한 분이 이 버스를 타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저상버스가 아니어서 승강장의 계단 턱이 그대로 보이는데 누가 저분을 도와줄까 유심히 보고 있는데 그분께 어느새 다가간 분은 내가 타고 있던 버스의 운전기사였다. 버스 출입 바닥 부분에 있던 철판을 펼쳐서 계단턱과 연결하고 휠체어가 버스에 탑승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다시 철판을 접어 원위치한 다음 운전기사가 운전석으로 돌아가서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빌라노프 정류장에서 내려서 보이는 공원에 초등학생들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폴란드도 축구의 나라였다는 걸 잊고 있었다. 겨울이어도 초록초록한 운동장에서 저마다 큰 소리를 명랑하게 주고받으며 활기 있게 달리고 있는 아이들 옆으로 유모차를 미는 엄마와 아빠들의 모습도 가끔 보였고 양손에 스틱을 들고 노르딕워킹을 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가끔 보였다.


빌라노프 궁전의 입장 티켓을 받고 정원을 한참 돌아서 입구를 찾았다. 문 옆에 앉아있던 관리인이 티켓이 있는지 확인하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라고 말해주었다. 아래층에 티켓의 바코드를 체크하면 가로막대를 밀어서 입장할 수 있게 되는 장치가 있었다. 공원 입구로 들어올 때 한 번, 박물관에 들어갈 때 한 번 바코드 체킹을 했다.


시작은 중국 도자기 컬렉션이고 왕의 응접실과 침실, 왕비의 응접실과 침실, 가족실, 기도실, 공연장, 공주의 방과 수집품 수납장을 지나서 이집트 컬렉션까지 보고 나면 왕실 가족들이 실제로 입었던 옷 진열장이 공예품을 판매하는 공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제는 관람을 시작하는 게이트를 못 찾아서 헤맸는데 오늘은 관람을 다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 직원이 내가 재입장을 하려는 줄 알고 자신의 아이디카드로 게이트를 다시 열어주었으므로 나는 박물관에 재입장했다가 다시 나오게 되었다. 1층 전시실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왔을 때 나를 재입장시켜준 직원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 보았다고 말하며 손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찾다가 누군가 밖으로 나가는 문을 얼른 따라가서 그 문을 열려고 했지만 닫혀버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뒤에 오는 세 명의 여성들에게 어떻게 밖으로 나가는지 물었다. 그분도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밀고 했지만 역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며 화장실 옆으로 나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이 계단 위에 입장할 때 표가 있는지 확인하던 관리인이 앉아있었다는 걸 그제야 기억했다. 내가 따라온 그분이 문을 열기 위해서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다 밀었는데 그 문도 아주 뻑뻑해서 잘 열리지는 않았다. 어떻든 잘 나오기는 했다.


생각해 보니 여행기간 내내 나는 건물마다 다른 출입방법 때문에 애를 먹었다. 들어가는 문, 나오는 문, 각각의 문 여는 장치와 문 여는 방법들이 대부분 달랐다. 우리나라도 빌딩과 주차장마다 각각 다른 키패드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어서 다른 집이나 건물을 방문할 때 미리 체크해 두어야 하는 출입 게이트와 키패드, 키버튼이 다양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좀처럼 출입문의 위치와 문이 열리는 손잡이 조작 방법과 문이 열리는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다. 어렵게 출입문을 찾아서 손잡이를 잡고 밀어보다가 안 열린다 싶을 땐 얼른 당겨보면 대부분 열리기는 하는데 가끔 잠겨져 있는 것 같아서 돌아서면 다른 사람이 힘껏 밀거나 당겨서 들어가기도 했다.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하며 지내고 있다. 오늘 아래층의 문을 열려고 애쓰다 계단으로 돌아가자고 말해준 사람들과 계단을 함께 올라가면서 이런 일은 그냥 흔한 일상이었나보다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마다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멀리 떨어져 있고 방향지시 안내문을 따라서 입구로 가면 안내인이 서 있다가 맞은편 어느 건물로 가서 표를 사 오라고 말을 했다. 나는 관광객이니까 어딘가에 있는 표시를 못 찾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순서대로 했지만 많은 현지인들도 안내인에게 같은 설명을 들으면서 매표소로 발길을 옮기곤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도 한산했다. 빌라노프 궁 정류소에서는 나 혼자 였는데 센트럴역 종점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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