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지엔키 공원

엄마의 립밤 한 개와 함께하는 공원 산책

by 미 지

바르샤바에서 가볼 곳 추천 1순위에 올라있는 와지엔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쇼팽동상이 있었다.

와지엔키는 목욕탕을 의미하는데 귀족들이 사냥을 하고 찾던 목욕탕이 여기에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왕의 응접실과 채플실, 식당과 침실이 있는 궁전 박물관 옆에 있는 목욕탕 건물이 목용용품 박물관이었고 물 위에 지은 궁전 옆에는 반원형의 수상극장도 있다.

날씨도 좋았고 춥지도 않아서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 공원 구석구석을 모두 다 둘러보기에는 너무 넓었기 때문에 안내지도에 나와있는 다섯 군데의 박물관 둘러보기를 목표 삼아서 걸었다. 두 시간 반을 걷는 동안 청설모와 공작새와 백조와 원앙새 한 쌍을 만났는데 겨울만 아니라면 하루종일 시간 보내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장소일 것 같았다.


Old Orangery 건물에는 로마, 그리스의 유적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인물들의 석고상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시장 안쪽의 소극장에서 오케스트라 음악이 실황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정식 연주회가 아니라 공연을 앞두고 하는 리허설인 듯했지만 어쨌든 오케스트라의 쇼팽 연주를 들으며 갤러리를 감상하는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마구간으로 사용했다는 건물에 전통 마구와 화려한 말안장을 비롯한 승마 도구와 마상 격투장면을 전시해 놓았다. 그 건물 옆에 있는 사냥 박물관에 들어갈 때 안내인은 2층을 보고 나서 1층의 포토 갤러리를 둘러보라고 권유를 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부터 사슴들의 머리가 박제되어 있었고 전시실에는 곰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동물들의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와 셀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진짜가 아니라 인조모형이길 바랐지만 작고 초라한 털색을 가진 동물들과 멧돼지의 이빨들만, 사슴의 뿔들만 모아놓은 공간들까지 인조모형은 하나도 없었다.


1층 사진전은 '지나간 100년 , 앞으로의 100년'의 타이틀이었다. 거처를 잃어버린 갈 곳 없는 동물들의 가련하고 처참한 모습들을 포커싱 해서 동물과 자연을 해치지 않고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위층에 전시된 수천 마리의 박제 동물들이 지나간 100년이라면 이제는 동물권을 존중하고 보호해 주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기도 할 터였겠지만 박물관의 그런 복잡한 마음 따위 아랑곳없이 가족과 함께 이 전시실을 들어오는 남자꼬마아이들은 한껏 고조된 목소리와 발소리를 내며 2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의 소식을 받았다. 매점 여사님께서 엄마가 평소에 드시던 간식과 함께 립밤 하나를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엄마는 전화하는 것도, 전화받는 것도 잊으셨기에 주보호자인 동생을 통해 엄마의 건강상태를 듣는 일 이외에 가끔 매점에서 물건 올려드렸다는 문자를 통해서만 엄마의 일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서 마음이 무겁던 중에 받은 문자가 내게는 선물과 다름이 없었다.


립밤 한 개.

엄마가 더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좋겠다.

예쁜 모자, 예쁜 양말, 예쁜 화장품, 예쁜 옷, 예쁜 가방....


짐가방을 챙기다 낡아진 옷 한 벌을 버렸다. 캐리어가 무거워지는 것이 싫어서 선물을 사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비워낸 자리만큼 선물을 담을 공간이 생겼으니 오늘은 쇼핑을 하며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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