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왕궁 박물관을 가기 위해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옛날시장건물이 있었다. 시장 바깥에 있는 좁은 길에는 벼룩시장 진열대가 놓여있었다. 집에서 쓰던 그릇, 시계, 옷, 가방, 장신구, 공구, 구형의 가전제품들과 전선들이 놓여있었다. 딱히 팔릴 거라는 기대도 없이 주변에 그 가판대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세명씩 모여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체험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공공기관 주변에 많았다. 버스 세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세 그룹이 모여있다가 차례차례 버스를 타러 갔다. 두 대의 버스가 출발했는데 마지막 그룹은 선생님 한 분 주변에 모여 서서 그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내가 절대로 알아듣지 못할 폴란드말인데, 약간 화가 나신 듯 한 억양과 발성만으로 그냥 무슨 말인지 다 이해가 되어버렸다.
'버스 타러 갈 시간에 맞춰서 모이기로 했잖아요. 우리가 어쩌다 버스를 늦게 타게 된 건지 다들 이유를 알고 있지요? 그동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요? 여기는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니 주변을 잘 확인하면서 조심해서 차를 탈거예요. 그다음 왜 우리 차는 늦게 출발해야 했을지 학교에 돌아갈 때까지 생각해 보도록 해요'
어디에서나 교사의 발성은 그렇게 저절로 같은 톤으로 정형화되는가 보다.
딸아이가 가끔 '엄마, 지금 선생님 같아!'하고 놀리는 말투가 그 톤이었다.
다른 골목에서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팀을 만났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건물 앞에 줄 세우면서 단체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의 사근사근한 말도 그냥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찍고 가자. 사진 잘 나오게 한 사람씩 간격 맞춰서 서 봐요~'
사실 딸아이는 내가 저렇게 사근사근하게 말할 때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년과 백조 동상 주변으로 백조와 오리와 비둘기 떼가 모이는 호수 옆으로 퀴리부인의 동상이 있는 saxon 공원을 지나서 바르샤바 왕궁 박물관에 들어갔다. 이곳은 나치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가 1984년에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티켓을 확인하고 지하에 코트를 맡기고 관람하라고 하기에 지하에 내려갔다. 코트를 맡긴 다음 어디가 전시장 입구인지 찾을 수가 없어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안내원에게 표 검사를 한번 더 받은 다음 전시장 입구를 안내받았다.
베르사유 궁을 둘러보다가 3분의 1도 안 되는 지점에서 피곤해져서 속보로 전시관을 통과해 버렸던 기억이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받으면 관람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고 분위기만 스캔하는 관람을 시작했다. 피곤해지기 전에 관람을 마쳤으니 그다지 크지는 않은 장소였던 것 같다.
쇳조각을 정교하게 연결해 만든 사슬갑옷과 판금갑옷과 철제 무기류들이 있는 방 지하에 죄수들을 가두었다는 작은 방이 있었다.
앳된 소녀들을 모아놓고 신성한 순결 서약을 하고 있는 그림 한 점. 그러나 그 그림 한 점을 제외한 나머지 전시품들이 담고 있는 것은 대부분 사치와 낭만과 전쟁이었다.
일찍 들어와서 쉬고 있는데 창 밖으로 보라색 노을이 보였다. 여기 오던 날부터 줄곧 저녁 무렵 비가 왔기 때문에 저녁노을을 볼 수 없었던 탓에 물든 저녁하늘이 무척 반가웠다.
서둘러 센트럴 주변을 산책하러 나갔다.
푸른 시간을 맞이하는 모처럼 개인 날, 거리에 전자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버스커 한 명이 있었고 쇼핑몰과 중앙역의 불빛이 화려했고 하늘을 긁고 있는 빌딩들 사이로 삼성과 엘지 로고가 붙은 빌딩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분주했고 어떤 사람들은 분주한 저녁 약속을 잡느라 화기애애했다. 어떤 사람은 어둠이 내리는 시가지의 하늘 공간을 구석구석 사진 찍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길을 갔다. 해가 사라진 동, 서, 남, 북의 하늘빛은 각각 다른 푸른빛이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에 유언장을 썼었다. 그때는 상담가들이나 종교인들이 한 번쯤 '유언장'을 써 보라는 조언을 할 때 이기도 했고,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으로 혼자 훌쩍 가겠다는 엄마에게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 마음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변명같은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양가의 부모님과 불화하다면 당연히 남편과도 불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주 아이들에게 그 불화를 들켰던 내가 아이들에게 가진 마음은 당연히 커다란 죄책감이었다. 그에 대한 변명이 그 유언장의 주된 내용이었기에 돌아와서는 흔적도 없이 찢어버렸다.
엄마의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오라는 아들과 딸에게 이젠 유언장이 아닌 편지를 쓴다.
옛날에 옛날에 한 소녀는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대.
어제보다 조금 불행한 오늘, 아마 내일도 오늘보다 불행할지 모르지만 오늘과 다를 거야.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그게 지나면 또다시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 오늘보다 많이 좋은 내일,
행복한 내일이 가고 조금 나쁜 내일이 오는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는 예언말이야.
날마다 날마다 다를 거라는 예언을 매일 하며 살았대.
모르면서 확신을 가진 어투로 잘 크고 있던 너희들을 주눅 들게 했었던 지난날에 미안해.
엄마는 휘청거리면서 제대로 가지 않는다고 너희들을 야단치며 힘들게 했던 지난 일들에 미안해.
앞으로도 여전히 내 생각만 말하면서 너희들을 힘들게 할지도 몰라.
아니면 내 엄마처럼 기억을 지워버리면서 너희들을 당황시키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매일 날마다 달라지겠지만 언제든 엄마를 뛰어넘기를 바라.
나이 들어 고집스러워져서 자꾸만 너희들을 붙잡으려고 할 때면 거리를 두어주길 바라.
해가 질 때의 노을빛도 매일매일 다르지.
해가 진 다음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하늘빛도 다 달라서 저마다의 사유로 저마다 다른 빛을 가지고 깊어가는 어두움의 얼굴도 괜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