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안식년을 보낼 때 나는 케냐를 가기 전 캄보디아 장애아 시설에서 4주동안 자원활동을 했었다.
캄보디아에는 자원활동가를 위한 숙소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에서 모인 자원활동가들이 학교와 고아원, 시설 등의 장소로 이동해서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볼런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민간 기관이 여러 군데 있다.
씨엠립에는 우리나라의 '밥퍼'공동체 같이 앙코르와트를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그야말로 밥을 퍼 주는 자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했다.
앙코르와트를 여행할때 나는 현지 이동수단인 (오토바이를 개조해 승객이 탈 수 있게 만든) '툭툭'을 2박 3일 대여해서 다녔는데, 글로벌 드라이버라고 자신을 소개한 툭툭 기사는 우리가 헤어지던 날 자기 동생이 운영한다는 볼런티어 숙소를 비롯해서 농장이나 고아원 활동을 연결해 줄 수 있다며 명함 뭉치를 여러 개 건네주었었다.
캄보디아와 아프리카 등의 몇 개 국가는 당시에 '빈곤'을 상품화한다는 비판 여론에 부딪혀있었고 볼런티어 활동가들에게는 고아원 봉사 활동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을 때였다. 그 툭툭 기사는 마치 암표상처럼 나에게 '이런 프로그램도 있어요', '저런 체험도 가능해요', '아, 마침 내 동생이 볼런티어 숙소를 운영해요... '하며 은밀하게 팜플렛과 명함을 건네주었는데 그것을 받는 내 손 끝과 입술 끝은 약간 갈 길을 잃은 것같이 느껴졌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여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NGO 단체 말고도 그저 마을에서 주민들과 숙식을 함께 하는 체험 여행부터 마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여행을 기획해서 신청하면 적절한 장소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여행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한 첫 날 내가 묶기로 예약된 볼런티어 숙소에서 연결해 준 툭툭 기사를 만났는데 그는 공항 주차장에서 내 가방을 차에 싣고는 잠시 기다려달라며 어디론가 갔다가 20리터 배낭을 머리 위로 한참 올라가게 메고 있는 여성 여행객 한 명과 함께 나타났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내 딸 또래의 그녀는 씩씩하게 가방을 내려놓고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녀도 나도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긴 대화는 어려웠다.
마침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아마도 프랑스에 있는 그녀 엄마의 전화였으며 잘 도착했다는 안부를 주고받는 듯했다.
그랬다.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원활동을 위해 머나먼 타지로 떠난 자녀들에게 안부를 전할 것이었다.
프랑스의 그녀는, 자기 엄마 또래의 영어도 잘 못하는 동양 아줌마와 자원봉사자 숙소로 가고 있었다. 나는 딸 또래의 프랑스 여자아이와 숙소로 가서 영국에서 온 두 명의 딸 또래 여성들과 한 방을 쓰면서 지내게 될 것이었다.
내가 캄보디아와 케냐를 다녀와서 나의 아들과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다.
정말로 세계에 몇 명 안 되는 엄마를 둔 아들과 딸이었기에.
능력이 많아서, 직업 때문에.. 그 같은 이유가 아니라 인생의 출발선에 선 젊은이들이 많이 선택하는 활동지를 옹알이 수준의 영어실력으로 단지 퇴직 후의 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선택하는 그런 엄마를 둔 아들 딸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돌아와서 내가 한 일은 평범함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때로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 평범하게 들어가기 위해 조금 다른 일을 해야 하기도 하니까.
안말에서 나는 흙을 퍼 내고 담고, 두둑을 쌓았다 풀고, 허브와 꽃들을 심다가 자리를 옮기고 , 씨앗을 뿌리고 나서 며칠이면 얼굴을 쏙 내미는 싹들에 감동을 받으며 햇살 아래 앉아있다.
길고양이 세 마리가 돌아가며 경호를 해 주는 작은 밭에 캠핑의자를 펴 놓고, 아프리카의 새소리와 다르지 않은 까마귀와 까치와 새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