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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y 02. 2022

어쩌겠니, 욕이라도 먹어야지...

"엄마가 병원에서 꺼내 달라고 전화를 하시는구나. 어제도 같은 전화를 하셨기에 내가 발 수술을 해서 엄마를 모시러 갈 수가 없다고 말했을 때는 어쩌다 수술했느냐, 괜찮으냐 물으시며 전화를 끊으셨는데 오늘도 똑같은 말씀으로 전화를 하셨어. 지난번에 엄마가 병원에 들어가시면서 앞으로 병원에서 나오겠다는 전화를 하면 당신 전화받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더니 없는 말 꾸며 말한다고 화를 내시네. 엄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서 1층까지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다고 하시면서 병원이 제일 편하다고 병원 나와서 우리 집 도착하자마자 다시 병원에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느냐고 소리를 질렀어. 옆에서 내 전화통화를 듣던 직장 동료가 자기는 부모님 없이 자라서 부모님이 계신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면서, 왜 엄마에게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말하는 거야. 그치. 부모님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 생전 엄마 얼굴 한 번 못 보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 많은데... 내가 할 말이 없었어."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격리 치료하는 열흘 남짓의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엄마의 전화통화는 다시 '병원에서 언제 꺼내 줄래?'가 되었다. 그건, '이제 엄마는 다 괜찮아졌다'라고 말씀하시는 신고식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엄마가 코로나로 많이 아파서 고생하지 않으셨느냐, 조금 더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면 '그런 일 없다, 컨디션이 아주 좋아서 산에도 뛰어올라갔다 올 수 있다'며 얼른 데릴러 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맑은 정신일 때  의사선생님과 나에당신이 또다시 병원에서 나간다고 고집부리면 전화받지말고, 퇴원시키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말씀을 해 드리는 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가방을 다 챙겨고 나가겠다 하신다는 간병인의 전화가 온 뒤 담당 간호사와 통화를 했다. 간호사와 의사가 엄마에게 가서 물으면  아무 일 없이 잘 생활하고 있다고 답을 하신다고 했다.


치매인들은 말기로 갈수록 젊어서 살아온 본인의 생활 모습, 지내 온 삶의 시간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의사샘께서 말씀해주셨다. 엄마는 '돈'에 무척 강박을 가지고 계셨고, 병원에서도 여전히 돈 때문에 사람들을 힘들게 하셨기에 돈을 드리는 일을 중지해야 했다. (간병인이나 매점 여사님이 돈이나 카드를 가져갔다고...)

천석꾼 만석꾼 마을 지주 할아버지와 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좇아 산 밑자락에 헐한 땅 천 평을 사놓으시고 돌아서면 키가 한자씩 자라 있는 잡초를 뽑고 약초를 심는 밭일을 하시다가 허리와 무릎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가버렸다.

이곳저곳 훠이훠이 날아다니고 싶다 말씀하시지만 차를 타면 한 시간도 못 가 힘들어하시고 길을 걸으면 5미터도 못 가 앉을 곳을 찾으신다. 휠체어에 앉게 해서 밀어주고 끌어주면 엄마로서의 본능이 돌아와서 얼른 병원으로 가시겠다 하시고, 병원에서 영양제와 진통제 치료로 컨디션이 괜찮아지면 또다시 밖에 나가겠다 재촉하시는 일이 무한루프처럼 반복되고 있다.


1년 전에는 한두 달 단위로 기억이 리셋되는 듯했는데 겨울을 넘기면서는 열흘 정도의 기억을, 최근엔 어제의 일, 다리 수술해서 걷지 못한다는 자식의 일도 기억 속에 유지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한테 내가 같이 살자고 말했는데도 엄마가 그냥 병원에 가시겠다고 하신 거라고, 그런데 또 기억을 못 하셔서 답답하고 속상해서 큰소리가 난 거라고 말 해도 직장 동료가 나를 욕하는 거야... 아무도 이해 못 해... 속상해..."


의도는 항상 내 마음과 달라서, 제작자인 '나'를 벗어나면 순식간에 색깔을 달리해서 타인의 의중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언니와 나는 그렇게 변색되어 타인의 의중으로 들어가 버 그 '의도'란 아이를 다시 붙잡아 오는 일을 멈추어버리는 습관이 있다.


"어쩌겠니... 욕이라도 먹어야지. 우리가 병든 엄마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찾아가서 뵙지도 않는 못된 딸이란 것은 맞으니까.... 내가  부모님께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남들이 욕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니? 욕이라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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