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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Aug 25. 2024

07 브런치 고시 재도전기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7)

     글쓰기 클래스 마지막 숙제를 아직도 못하고 있다. 브런치에 숙제글을 올리려면 작가 신청에 통과해야 한다. 브런치 고시에 떨어진 이후로 브런치 글을 많이 읽어보고 있는데 읽을수록 기운이 빠진다.


   글쓰기 클래스 내내 ‘당신의 글은 기존의 글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배웠다. 그 관점으로 브런치 글들을 읽어보니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쓰고 있는 글은 유방암 진단 후에 달라진 내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브런치 검색창에 ‘암’이라고 치면 정말 많은 글들이 나오는데, 상단에 나오는 몇 편만 읽어봐도 그런 글들은 세상에 넘치고 넘쳤다. 「태교여행 비행기 출발 세 시간 전, 혈액암 확진받다」라는 글처럼 내가 겪은 일은 소소하게 보일 만큼 엄청난 사연들도 많다. 『우리 동네 흔한 암환자 이야기』라는 연재글처럼 암 경험자가 겪는 시기별 상황과  감정들이 잘 실려 있는 글도 많다, 『유방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작품집처럼 치유를 돕는 유용한 정보까지 잘 정리되어 있는 것도 많다. 계속 읽다 보니 나까지 보탤 이유가 없어 보인다.


   왜 나는 쓰려고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글쓰기 클래스 숙제를 해내고 싶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글쓰기 숙제를 싫어하기는 했지만 ‘글’이 아니라 ‘숙제’라는 것이 싫었다. 끝내지 않으면 체기 비슷한 느낌을 주는 숙제가 무겁다. 압박감을 주는 숙제가 없어도 나는 늘 쓰는 사람이었다. 매일 일기를 쓰고 누군가에게 할 말이 생기면 전화를 드는 게 아니라 편지를 썼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글부터 썼다. 나는 머리로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로 사고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내 존재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세상에 아무리 좋은 글이 많을지라도 나는 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생의 다른 시기에는 그때의 인연 따라 글을 쓰겠지만 지금은 암이라는 친구와  강렬하게 부딪혔으니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몇 주 전 브런치 고시에 떨어지고 난 후, 내 안에 실루엣만 강렬한 브런치 언니가 생겼다. 큰 뿔테 안경을 쓰고 얼굴형은 좀 길다. 브런치 언니가 한 손으로 안경을 올리며 나를 향해 계속 묻는다.

“글쓰기 숙제가 싫다면서요.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계속 숙제를 제출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독자들에게 계속 글쓰기 숙제를 내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하겠다는 거죠? 글쓰기가 좋으면 그냥 본인 일기장에 쓰는 방법도 있을 텐데요.”


  브런치 언니의 예리한 공격에 할 말을 잃는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글쓰기 클래스 숙제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집어 먹은 쿠키가 상당하다. 숙제가 아닌 글을 쓸 때는 쿠키 봉지를 뜯은 적이 없다.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평안한 삶을 위해서는 브런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돌아서려니 누군가가 나를 붙잡는다.


  “잠깐만요. 나는 당신이 일기장에 쓴 글보다 숙제로 제출한 글이 더 좋았어요. 그냥 좋은 게 아니라 훨씬 훨씬 좋았어요. 계속 숙제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 또한 내 속의 목소리이다. 암치료받으며 많이 아플 때, 머리는 멍하고 아무것도 읽어지지 않고 써지지 않았을 때 만난 목소리다. 평소 같으면 거뜬히 읽어냈을 텍스트들이 읽어지지도 않고 글이 써지지도 않아 낙담했던 그때에도 내가 쓴 글만은 읽어졌다. 그때 이 목소리가 계속 나를 응원했었다.  

  “고마워요. 읽을 글을 써 놔서. 이 글이 위로가 되네요. 얼른 건강해져서 글을 더 많이 써 줘요.”

  라고 계속 말해 주었다. 나로서는 퍽 고마운 목소리다.  땡큐 언니라고 부르자.


   땡큐 언니 말이 맞다. 사실 내가 봐도 그냥 끄적인 글보다 숙제로 쓴 글이 훨씬 더 낫다. 혼자 쓰는 글은 전체적으로 엉성하지만 특히 마무리가 '흐지부지'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묘사해 놓는 일까지는 한다. 그런데 그 일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쓰는 일은 어렵다. 세상의 모든 좋은 말은 철학자들이 다 해 버렸고 나는 내 말로 어떻게 그것을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쓰다가 이어지지 않으면 ‘여기서부터 안 써짐 ㅠㅠ’이라고 쓰고는 글씨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꿔둔다. 다음에 다시 열어서 이어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금세 다른 글감에 정신이 팔리고 미완성 글은 쉽게 잊힌다. 지금도 내 노트북에는 시작만 해 두고 끝을 내지 못한 글들이 쌓여 있고 그런 글들은 쉽게 폐기된다.


   하지만 숙제로 쓰는 글은 일단 끝은 맺는다. 독자들에게 짓다 만 밥을 대접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끝은 낸다. 특히 마무리 문단을 쓸 때 가장 힘이 든다. 쿠키 봉지를 뜯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내 마음속 바닥까지 파고파고 또 파야 한다. 결론의 내용은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가와 이어져 있다는 비장한 기분마저 든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결론 부분은 수십 번 수정한다. 아니, 사실은 밥 먹을 때도 설거지할 때도 운동할 때도 머릿속으로는 이어질 문장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알맞게 이어지는 다음 문장을 만날 때의 희열이란! 내가 이 맛에 글을 쓰지 싶다. 살아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인간이란 무엇을 창조해 내야, 그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해야 사는 맛이 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다. 내가 이 맛에 그동안 글쓰기 모임에, 글쓰기 숙제라는 상황에 나를 종종 밀어 넣곤 했었다. 숙제는 알맞은 다음 문장이 찾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힘을 주기 때문에.


   브런치 언니에게 할 말이 생겼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땡큐 언니에게 좋은 글을 써 보내고 싶어요. 숙제를 하기로 했어요.”

  

  브런치 언니는 여전히 의심이 많다.

  "땡큐 언니에게 보낼 글이라면 본인 블로그에 써도 될 텐데요. 굳이 공개글로 쓸 필요가 있나요? 숙제가 주는 압박감을 견딜 수 있나요? 다음 문장이 찾아오지 않아서 답답하면 마음건강에도 안 좋을 텐데요."

 

  내 대답이 이번에는 좀 절박하다.

 "맞아요. 난 글쓰기 숙제를 낼 때 미완성으로 제출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죠. 그만큼 독자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다는 말이고요. 세상에 땡큐 언니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봐요. 병상에서 브레인포그로 아무것도 읽어지지 않아 슬픈 사람들요. 쉽고 가볍고 재미있는 암 이야기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읽어진다면 그 순간을 넘어가기 좋지 않을까요? 세상의 암투병기는 죄다 너무 무거워요.  난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어요. 암이 나에게 찾아온 로또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이 왜 복덩이인지 유쾌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암을 경험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땡큐 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모두 잘 살아 있자고. 각자의 88세 생일 때 즐겁게 지난날의 치병기록을 읽어보자고. "

 힘주어 말하고 나니 더욱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 작가신청 등록 버튼을 다시 누른다. 첫 번째 질문은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것이다.                          

  암을 만나고서 로또 당첨이 되면 이렇게 살아야지~하고 꿈꿨던 삶을 실현하며 살고 있는 암 경험자입니다. 요즘은 88세 생일에 읽을거리(『암으로 인생역전』)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갱년기 초입에  암수술을 받고 어떤 글도 읽어지지 않는 몸상태를 겪었어요. 아무 문장도 독해가 되지 않던 그때에도 내가 과거에 썼던 글은 읽히더라고요. 과거에 글을 써둔 제 자신에게 고마운 순간이었지요. 88세에 "왜 이것밖에 안 써 놨어! 더 없어?"하고 투덜거리지 않기 위해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 ‘브런치 활동 계획을 알려주세요.’에 대한 답은 동문서답을 써냈던 첫 도전 때와 많이 달라졌다. 내가 쓰고픈 글을 구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흐름으로 글을 쓸 테다.                              

제목 : 암으로 인생역전
목차 : 워낙 작은 가슴 덕분에 / 권력관계의 변화 / 변비사건 /박제하고픈 마음 /가슴의 쓸모 /위로랭킹 / 유치원이었던 나미야 암요양병원 / 가벼운 암 VS 무서운 주사 / 살려 씨 이야기 - 밤을 끊어라 / 나는 이 호르몬이 좋다 / 나미야 암요양병원의 기적 / 나미야 암요양병원의 싸움이야기 / 의사 왈 암의 원인은 친정 엄마!/ 평화 씨와의 전쟁 /내 부고는 받지 못할 거야/ 당신이 88살에도 글을 읽으려면

목차를 적고 나니 글을 쓰고픈 욕구가 물씬 피어오른다. 브런치 심사팀이 어떤 대답을 하든 계속 글을 쓰게 될 예감이 든다. 세 번째는 내가 쓴 글을 링크해 두는 것이다. 나는 전에 써두었던 '워낙 작은 가슴 덕분에'와 '수술 후 변비사건'이라는 글을 링크했다. 그리고 제출하기 버튼을 누른다.



  이틀 후에 브런치 작가 등록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독자님들을 만날 때인가 보다.

브런치 작가 등록 합격 메일




from 51세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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