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안 된 게 더 유리할 수도... (1)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임원은 그만두면 회사에서 일정 기간 동안 급여를 계속 지급한다. 예를 들어, 상무로 재직하다가 그만두면 첫 해에는 급여의 100%를, 둘째 해에는 급여의 70%를, 셋째 해에는 급여의 50%를 지급한다. 직위가 높아지면 그 비율과 기간은 조금 더 달라진다. 그것은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임원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하여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했는데 퇴직 후 생활이 궁핍하면 기업의 대외적 이미지에 손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전직 임원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곳으로 전직을 하여 직장 생활을 계속 유지하면 이런 지급은 없다.
당신이 직장생활 할 때 임원이었던 것과 임원이 되지 못했던 것이 퇴직 후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사람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 출발점이 다르다. 부장을 하다가 그만두면 좀 허접한 사업을 해도 부끄럽지가 않다. 차장과 부장도 한 단계 차이이고 부장과 임원도 한 단계 차이지만 왠지 차장과 부장은 같은 레벨이고 부장과 임원은 레벨 차이가 큰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임원 출신이 허접한 사업을 하면 주변에서 따가운 눈총을 준다. ‘대기업 임원까지 했던 사람이 퇴직 후에 저런 일을 해? 회사 생활할 때 뭐 했어?’
대기업 인사팀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하며 말뚝 인사부장을 하던 A 부장은 임원이 되지 못하고 직급 정년에 밀려서 퇴직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그 기간 동안의 노고를 생각하여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의 지하층 식품매장의 즉석김구이 매대를 하나 임대해줬다. 일반 사람이 그 백화점의 식품매장에 매대를 하나 임대받으려면 경쟁도 치열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A 부장은 그런 과정이 없이 코너를 얻었으니 일종의 특혜인 셈이었다. 하지만 20년 이상 근무한 계열사 직원한테 그 매대를 특혜로 임대해 줬다고 해서 특혜시비를 거는 주변 상인은 없었다.
하지만 A 부장은 그 매대에서 당장 일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경험도 없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매대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분명 특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자리였다. 당장 할 일이 없는데 혹시 나중에 일이 생기면 그 때 되돌려줄 때 되돌려 주더라도 일단은 그걸 잡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A 부장은 부인을 설득하여 부인으로 하여금 그 매대에서 판매를 하게 했다. 어려움에 처하면 여자가 남자 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부인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먹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강하게 먹고 일을 배우고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한 달 간 A 부장은 그 매대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부인과 같이 출근하여 매대를 판매가 가능한 상태로 정리한 후 먼발치에서 마치 손님처럼 그 매대를 지켜보다가 마칠 때가 되면 가서 매대를 정리한 후 부인과 같이 퇴근하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는데 매대가 위치가 좋아서 그런지 백화점이 유명 백화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오픈 첫 달임에도 불구하고 예상 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게 되었다. A 부장은 부인한테 미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으며, 또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평생 장사라고는 한 번도 안 해본 부인이 자신이 직장을 잃자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저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는데, 대기업 인사부장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양 체면 생각하면서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대체 자신이 가장으로서 자격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달째 부터는 자신도 부인과 같이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둘이 같이 하니까 매상도 좀 더 올랐지만 그것보다도 부인과 서로 시간을 봐가면서 교대로 쉬니까 부인이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한다. A 부장은 생각했다. ‘내가 만약 임원이 되어서 그만뒀다면 여기서 김을 굽고 있을 수 있을까?’
... (2)에서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