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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Nov 07. 2019

대기업 임원 보다 구멍가게 사장이 낫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소속팀이 실적이 아주 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팀장은 남자 팀원들을 모은 자리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업을 개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당시 나는 친구가 을지로에서 양변기 대리점을 하고 있었기에 “중국산 양변기 수입사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건의를 했더니 “그 품목은 다른 팀에 해당되는 품목이라 우리 팀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고작 다른 팀에 해당되는 품목이라서 안 된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저 분류상 다른 팀에 해당되는 품목일 뿐 지금 그 팀에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생각도 없는데 그저 팀간 업무 협조만 구하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팀에서 “우리 팀에서는 관심이 없으니 그 팀에서 하시려면 하세요”라고 할 게 뻔한데 한 번 물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다니 답답했다.


공직에서 30년 이상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선배 한 분을 만나서 식사를 했다. 요새는 공무원이 인기가 제일 좋다는 기사도 있지만 특히 그 선배는 공무원 중에서도 좋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셨기에 여러 면에서 참으로 부러운 선배였다. 정년퇴직을 했으니 이제 뭘 할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대뜸 나한테 한 마디 하신다.


“나는 이사장이 참 부러워.”

“저는 형님이 훨씬 부러운데요? 형님이 제가 부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이사장은 정년이 없잖아.”


마지막 이 말 한 마디에 나는 선배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정년이 없다. 비록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조그만 회사 사장이지만 그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다. 대기업 임원 보다 정년이 5년 이상 긴 공무원 선배가 그런 말을 하는데, 그럼 과연 대기업 임원들은 기분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면 정말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회사에서 급여를 받고 사는 사람들은 회사 규정에 따라야 하고 회사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못한다. 하지만 개인사업가는 비록 구멍가게 사장일 지라도 선택을 본인이 한다. 선택을 본인이 한다 함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하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무엇을 하고 언제 어느 것을 하느냐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즉, 개인사업가는 자신이 원하면 새벽에 일을 할 수도 있고 주말에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판단에 따라 며칠 그냥 쉴 수도 있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곧 규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모두 져야 한다.


나는 결국 회사에서 규정상 못하게 했던 양변기 수입사업을 독립 후에 했다. 독립 후 당장 하지는 못했지만 그 사업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내 개인사업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그 사업을 집중 검토하여 시작했던 것이다. 개인사업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 사람들한테 대기업 임원과 구멍가게 사장을 비교해 보라고 하면 비교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대기업 임원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명성도 있고 아무나 쉽게 될 수 없는 높은 지위라고 평가하지만, 구멍가게 사장이라고 하면 누구나 자본만 있으면 쉽게 창업이 가능하고 사회적인 명성이나 높은 지위라기 보다는 그냥 동네 아저씨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이가 50세 정도 된 사람한테 물어보면 좀 달라진다. 대기업 임원은 조만간에 퇴직을 하게 될텐데 다니던 회사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일정 기간 헤매다가 동네에 작은 가게를 내놓고 동네 아저씨한테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그나마 평소 대기업 임원이라고 목에 힘을 주지 않고 겸손하게 살았다면 도움을 받겠지만, 평소 대기업 임원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동네 아저씨를 마치 아랫사람 취급하듯이 행동했다면 그 도움 마저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가 좋을 때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빌딩을 구매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수들은 대기업 직원들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이 훨씬 짧다. 그래서 자신이 운동을 접어야 할 날이 언제 올 지 전혀 알 수 없기에 일찌감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사실 직장인들도 그런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면 오래도록 자리를 보전할 걸로 생각하는데, 그래 봤자 50세 정도이다. 입사 동기들 중에서 50세까지 근속을 하는 비율을 한 번 계산해보라. 아마 10퍼센트 정도도 안 될 것이다. 어느 통계에서는 신입사원이 임원까지 승진할 확률이 1퍼센트도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좀 과장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확률은 상당히 낮다.


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고 오늘도 그 자리를 위해서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직장인들께 말씀 드리나니, 첫째, 임원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둘째, 임원이 되었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임원 보다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기 바란다. 임원이 되는 것 인생의 목표로 해서 평생 열심히 해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아주 낮은 확률의 임원 승진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자신이 꿈꿔오던 것과 다르고, 평소 허접하게 생각했던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더 낫다는 걸 느끼게 되었을 때의 허탈감은 어떡할 건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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