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범 Nov 07. 2019

사람이 싫어서 사표를 던지면 후회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회사가 어디든, 어떤 업무를 맡고 있든 어쨌든 직장생활은 매일 힘든 일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나 사표를 내고 쉬고 싶어 하고, 어떤 친구는 술만 마시면 ‘그만둘 거야’ 라는 말을 해서 그 친구는 술주정이 ‘그만둘 거야’ 라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사표를 과감하게 던지지 못하고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내가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였다. 사전 예고도 없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지사 발령을 받은 게 출발점이었다. 뭐, 회사 생활하다 보면 인사발령이 예고 없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 내의 모든 일은 선례가 있다. 그전까지는 해외지사 발령 전에 본인의 사정을 물어보고 간단하게나마 본인의 동의를 구했는데, 왜 나한테는 그러지 않았을까? 나한테는 사전에 약간의 귀 뜸도 없이 인사발령장은 인사팀으로 넘어갔고 나는 무조건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첫 애가 곧 태어날 시기였다. 기초생활수준이 열악한 인도네시아, 하지만 한 번 가면 5년은 근무해야 하니 온 가족이 같이 가야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회사에서는 사전에 내 상황을 확인도 안 해 보고,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했을까? 그 전에 다른 지사로 발령이 난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분명한 차이가 느껴졌다. 이럴 때는 ‘윗사람의 정치적 의도에 아랫사람이 활용되었다’는 소문이 진짜처럼 들리게 되는가 보다. 갑자기 윗사람이 싫어졌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지사 발령이 부임 날짜가 임박하자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취소가 되면서 사내에서 내 입지가 허공에 붕 뜨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해외지사로 나가기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본사에서의 내 업무는 다른 사람에게 인계되었는데, 비행기가 뜨지도 않고 갑자기 내가 본사에 내려앉았으니 내가 앉을 자리가 애매하게 된 것이었다. 나와 내 가족의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인데, 큰 회사라서 그런지 나와 내 가족을 그저 단순한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내가 소속된 부서의 장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나는 심한 배신감에 회사를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그만두려고 한다는 걸 다른 회사에 있던 선배가 알게 되어서 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서 다행히 그 회사로 옮기기는 했지만, 나의 사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매우 큰 모험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제의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실직자가 되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서랍 어느 한 구석에 사표가 있는 직장인에게 한 마디 충고하자면, ‘사람이 싫어서 감정적으로 사표를 던지지는 마라’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 때 그만두지 말았어야 한다. 비록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좀 더 회사를 다니면서 퇴직 시기를 내 상황에 맞게 저울질 했어야 하는데, 감정이 앞서서 사표를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표가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던진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당시 문제는 내 윗사람이었다. 만약 당신들도 이유가 나와 같다면 그만두면 안 된다. 버텨야 한다. 생각해보라. 누가 더 직장생활을 오래 하겠는가?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은 당신 보다 먼저 그만두게 되어 있다. 나중에 사업할 때 다가올 위험에 대해서 연습한다고 생각하라. 직장인도 사표를 던지고 싶을 때가 있듯이 사업을 하다 보면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판매자는 가격을 안 깎아주고 구매자는 그 가격이 안 되면 안 산다고 하고, 적자보면서 거래할 수는 없고 도저히 답이 안 나올 때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온다. 직장생활 할 때 잘 버텼던 사람은 사업하면서도 잘 버틴다. 물론 그런 상황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판매자나 구매자가 쉽게 마음을 바꿀 리가 없다. 하지만 버티다 보면 어디선가 풀리는 날이 온다.


나는 사람이 싫어서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곧 회사를 그만 두고 사라져버렸다. 만약 그 사람이 회사에 남아서 높은 자리로 진급했다면 나는 내가 불쑥 던진 그 사표 때문에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 전에 내가 속해있었던 회사에서의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 전에 속해있었던 회사에서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의 평가를 받게 되어 있다. 직장인들은 회사 내부에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지만 사업가는 사회 전체로부터 평가를 받기 때문에 어디서 누구한테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내가 몸담았던 회사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싫어서 불쑥 사표를 던지고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래처에 인사를 가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더니 ‘어디서 직장생활을 했느냐’고 묻는다. 당연한 궁금증이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뜨고 나서는 예전 직장에 아는 사람에게 나에 대해 묻는다. 빤하지 않는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궁금한 게 ‘왜 그만 뒀느냐’는 것이고, 본인이 아무리 말을 잘 해도 결국 그러한 것은 그 전 직장에 남아있는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내가 하는 말은 안 믿는다. 본인이 본인에 대해 나쁘게 말을 할 리는 없지 않는가? 그럴 때 그 전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해 나쁘게 평가한다면 내 사업은 출발부터 삐걱거릴 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사표를 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타이밍과 분위기를 잘 봐야 한다. 그 타이밍과 분위기가 나의 다음 인생에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될 수가 있다.

이전 03화 직장인과 프리랜서, 누가 더 좋은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