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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Nov 07. 2019

직장인과 프리랜서, 누가 더 좋은가?

내 월급이 백만 원이던 시절 나의 영업이익 목표는 2천만 원이었다. 이해가 안 되었다. 도대체 1천9백만 원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론 사내에는 돈을 벌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 여직원부터 시작해서 팀장, 임원, 관리직원, 사장까지. 그래도 내 월급이 백만 원인데 나머지 사람들이 1천9백만 원을 가져가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 영업사원이 나 혼자인 것도 아니고 많은 영업사원들이 모두 나와 같다면 그 1천9백만 원이 모이면 얼마나 큰돈이 되겠는가?


그런데 그 계산법은 맞는 계산법이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근무했던 나의 영업이익으로 회장님 월급도 드려야 했고 해외지사 주재원들 월급과 비용도 부담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 물론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한 달에 2천만 원을 버는 것이니 나누는 게 맞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과연 나는 한 달에 얼마나 벌 수 있을까? 만약 백만 원 이하로 번다면 직장에 남아 있는 게 낫겠지만 백만 원 이상을 번다면 직장을 그만 두는 게 나을 것이다. 독립하면 번 돈 모두를 내가 가지니까. 직장에서 한 달에 2천만 원 벌던 내가 해외지사의 도움 없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설마 백만 원 못 벌겠어? 영업사원의 마음속에 이런 고민이 싹트기 시작하면 가슴속 저 깊은 어디에선가 독립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신호이다.


영업사원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방송인들 중에서도 아나운서들은 최고의 엘리트로 평가해준다. 정확한 발음, 높은 지식수준, 거기다 약간의 끼까지 더한 아나운서는 예능프로그램의 러브콜을 많이 받는다. 그렇게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나면 갈등이 생기게 될 것이다.


연예인들은 편당 출연료를 받지만 방송국 직원인 아나운서는 출연 회수와 상관없이 월급을 받는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한 달간 진행한 후 연예인이 받는 출연료와 방송국 직원이 받는 월급은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모 방송국 어느 아나운서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은 방송국 직원이기 때문에 여러 프로그램에서 싸게 편하게 써먹을 수 있다고 농담하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기업체의 영업사원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욕구가 그 아나운서의 마음속에서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 아나운서는 그 말을 뱉은 지 오래지 않아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직장인과 프리랜서는 일장일단이 있다. 직장인은 안정적이지만 보수가 만족스럽지 않고 프리랜서는 보수는 높지만 잘 못 풀리면 일 년 내내 한 편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또한 직장인은 사내에서 열심히 하면 직위가 올라가서 아주 높은 위치에 이를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오로지 금전적인 수익만을 기대할 뿐이다. 그들은 고민할 것이다. ‘내가 지금 방송국 직원의 신분으로서 누리고 있는 이러한 인기가 과연 프리랜서가 되어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방송국 직원이니 싼 맛에 여러 프로그램에 자주 캐스팅 되지만 만약 내 몸 값이 높아지면 지금처럼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을까?’ 라고.


대기업 영업부서에서 수입시판 사업을 담당했던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대리점의 영업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다녀야 했다. 당시 지방 대리점 사장님들은 어린 나한테 지나칠 만큼 대접을 잘 해 주셨다. 최근 갑을 문화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있지만 나는 애초에 내가 갑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 비록 닥친 상황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 드신 분들에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어른 대접을 해드리려 노력했었다. 사실 당시 내가 속했던 부서의 영업 문화 자체도 그러했기에 나만 특별히 예의바른 본사 직원은 아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사람들은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하면 지금처럼 날 대해줄까? 나는 대기업 영업 담당자에 불과하고, 내가 그만두면 그 사람들은 새로운 담당자에게 나한테 하듯이 해야지 그만둔 나한테까지 계속 그렇게 잘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회생활에서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니 설사 누군가가 나를 모른 척 한다 하더라도 결코 서운해 하지 않는 게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우산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직장을 그만두려고 생각하면 먼저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은 냉정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보살펴주지 않는다. 설마 비가 오겠냐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비에 흠뻑 젖는다. 직장을 그만 두고 최소한 1년, 기본 2년은 비를 맞아야 한다. 그러니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우산은 필수다. 프리랜서를 선언했던 방송국 아나운서들도 아마 프리랜서를 선언하기 전에 다른 방송 프로그램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최대한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직장인과 프리랜서는 다르다. 프리랜서는 개인 사업가이다. 직장인이 사내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열심히 해서 그 지위를 목표로 하면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상황에서는 프리랜서를 준비해야 한다. 갑자기 진급이 안 되어서 실직을 하게 되면 우산 없이 바로 빗속으로 던져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먼저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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