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다. ‘그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내일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거야’라고 하며 마음을 굳게 다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장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장 속에는 단순히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할 일은 오늘 하자’라는, 노력을 격려하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왜 하필 사과나무일까? 사과는 유실수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사과를 수확하는데 십 년 정도는 필요하다. 소나무 같은 관상수가 아니라 유실수인 사과나무이다. 그것도 심고 십 년 정도는 지나야 수확을 할 수 있는 과일나무. 그래서 우리는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십 년 후에 따먹을 과일나무를 심는 것이 얼마나 먼 미래를 내다보는 행위인가?’라며 찬사를 보낸다. 스피노자의 말을 직장인에게 적용되게 한 번 바꿔보자. ‘내일 잘리더라도 오늘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자’라고 바꿔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스피노자의 말을 현실에, 특히 직장생활에 적용하면 안 된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멋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냥 멋있을 따름이지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우리는 스피노자의 말 중에서 ‘사과나무’라는 단어에 너무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집중해야할 부분은 ‘사과나무’라는 한 단어가 아니라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식목행위이다. 왜 하필 나무를 심겠다는 것인가? 사람은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니 난데없이 계획에도 없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스피노자는 오래 전부터 내일 사과나무를 심을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획했던 사과나무 심는 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그 다음 날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다음 날 지구의 종말이 오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은 계획대로 그 날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십 년 후에 따먹을 수 있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게 아니다. 그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원래 계획대로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이다. 즉,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 계획대로 살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한 마디 더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그걸 피할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그냥 즐기라는 것이다. 내일 오게 될 지구의 종말을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의 내 인생을 즐기라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같은 말이다. 이 문장은 직장인들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는 말이다. 매일 직장 내에서 이런 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겨라. 아니 즐기려고 노력하라.
실직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즐겨야 할까?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내 주머니에 돈이 없다 하더라도 나중에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올 계획이 있다면 즐거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다리를 걸쳐야 한다. 월급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내 주머니에 월급 이외의 돈이 들어올 일이 전혀 없으니 즐길 일이 없는 것이다. 근무시간에는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해서 월급을 받아라. 하지만 퇴근 후에는 내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 사업을 하라.
스피노자의 말처럼 만약 당장 회사에서 내일 그만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일 직장을 그만두든 말든 오늘 계획대로 내 일을 해야 할까? 물론 당장 내일 그만두라는 말은 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두라는 말은 할 것이다. 상상해보라. 만약 그 날이 왔다면 나는 어떨 것인지 상상을 해보라. 만약 내가 틈틈이 부업을 해서 어느 정도 수입이 있다면, 머릿속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그 사업을 키우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내 사업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지 못해서 지금까지 양다리 걸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을 회사에서 해결해준 격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당장 머릿속이 새까맣게 변한다. ‘뭐하지? 다른 회사로 갈까? 그런데 다른 회사에서 나를 받아줄까? 선배를 찾아가서 상담해 볼까? 아니면 인사부장을 만나서 빌어볼까?’ 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사업계획이 돌아가고 있는데 미처 예상하지 못하여 준비하지 못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떻게든 계속 자리를 보전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미 해고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본인이 찾아와서 읍소한다고 조금 더 일하도록 해주는 회사를 봤는가? 본인만 초라해질 뿐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마지막에 회사 그만둘 때 구차했다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는 이만큼 차이가 큰 것이다. 그 날은 반드시 온다. 준비하라. 준비하면 부딪힐 수 있고, 또한 즐길 수도 있다. 회사에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할 때 깔끔하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