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조교 시절에 교수님을 따라 난을 캐러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 교수님께서 ‘나의 난 밭’이라고 하셔서 나는 정말 난 밭에 가서 난을 캐서 담아 오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곳은 전라북도 어느 산의 기슭이었고, 교수님께서 ‘나의 난 밭’이라고 하신 곳은 그냥 난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산이었다. 난은 아무 곳에서나 자라는 식물은 아니었다. 환경에 민감한 식물인데 전문가들은 산세나 주변 환경 등을 보면 난이 잘 자라는 곳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아무 산에서나 캘 수 있는 게 난이 아니라고 하신다. 난이 참 좋은 식물인 건 맞다. 교수님 연구실에는 수십 종의 난이 있는데(물론 아주 좋은 건 집에 있지만) 한 곳에서 꽃이 피면 작은 꽃 한 송이에서 나는 향기가 연구실 전체에 은은하게 퍼지는 게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예전에 선비들도 난을 좋아했었나 보다.
난은 주로 이른 봄에 싹이 조금 올라온 때 캔다고 하신다. 더 자라면 사람들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캐어가 버려서 기회가 없으니 싹인 상태에서 찾아야 좋은 난을 캘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작은 작대기를 하나 주시면서 낙엽 사이를 뒤지다가 녹색 풀이 나오면 그걸 보고 난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데, 일반 잡초와 난은 자세히 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고 하신다. 나는 어떻게 잡초와 난을 구별하는 지를 간단하게 교육받은 후에 난 채집에 들어갔는데, 보이는 게 모두 잡초 같아서 구별이 쉽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난 채집을 마친 후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잠시 휴식을 하는데, 교수님은 몇 개 채집하셨지만 나는 맹탕이었다.
“난은 여자들이 잘 캐. 진도는 남자들이 더 빨리 나가는데 실제로 난을 발견하는 건 여자들이 훨씬 더 잘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부부동반으로 난을 채집하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 남자들은 힘도 좋고, 남들이 안 간 자리를 남들 보다 빨리 선점하기 위해서 빠른 속도로 휙휙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난을 발견하기 어려워. 난은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않아서 싹인 상태이고 낙엽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작대기로 휙휙 저어가지고는 작은 싹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데 남자들은 왠지 남이 밟지 않은 땅을 자기가 먼저 밟아야 난을 먼저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체력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그 자리를 다시 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남자들이 휙휙 지나간 자리를 여자들이 천천히 꼼꼼하게 다시 보면 오히려 거기서 난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그러면 남자들은 허탈하겠습니다.”
“그렇지. 어떤 경우에는 좋은 난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어? 거기 내가 조금 전에 지나온 자린데? 내가 왜 그걸 못 봤지?’ 하면서 아쉬워하지. 하지만 그것은 말 뿐이고 다시 이전처럼 빠른 속도로 지나가지 방식을 바꾸지는 않아.”
남자와 여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난을 채집하는 곳에서도 나타나듯이 남자들은 주로 일을 크게 벌이고 키우는 데 능숙한 반면 여자들은 일을 수습하고 챙기는 데 능숙하다. 그래서 작은 회사 중에서 영업은 남편이 하고 재무는 아내가 담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람직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기업에도 남성형이 있고 여성형이 있다. 남성형은 주로 사업을 확장하는데 중점을 두는 기업이고 여성형은 주로 내실에 중점을 두는 기업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대표적인 남성형 기업으로는 롯데그룹을, 대표적인 여성형 기업으로는 애경그룹을 든다. 두 그룹이 운영하는 백화점만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 집에서는 롯데백화점도 가깝고 애경백화점도 가까워서 두 군데를 가끔 방문하는데 확실히 롯데백화점과 애경백화점은 다르다. 롯데백화점에서 쇼핑할 때는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애경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때는 실속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롯데백화점은 명품이 유명하지만 애경백화점은 실속형 상품이 주부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소규모 창업이나 투잡은 여성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직장에서 받던 연봉만큼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성이 중심이 되어서 사업을 확장하고 광고 선전 등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하여 사업을 키워야 하겠지만, 소규모 사업이나 투잡으로 여유시간에 일을 한다면 그러한 프로모션 보다는 안정적이고 클레임 없는 품목 선택 및 비용 관리가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