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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Dec 02. 2019

베란다에 간판을 걸어라

사업하는 사람은 고정비용에 민감해야 한다. 흔히 오버헤드라고도 부르는 고정비용은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그래서 모든 사업가들은 사업을 선택한 후 전망을 판단할 때 고정비용을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한다. 내가 일반 사무실을 오픈한다고 생각하고 고정비용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임대보증금(물론 나중에 돌려받지만 일단은 필요하다), 월 임대료, 사무실 관리비, 사무용 비품, 통신비, 소모품비, 교통비, 접대비/복리후생비 등. 여기서 만약 직원을 고용하게 되면 고정비용은 몇 가지 항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두 배로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인원계획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사업을 하려면 사무실이 필요하다. 고객을 접견해야 하고, 일을 집중해서 하려면 별도의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사무실이 작다고 하더라도 일단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면 아무리 절약해도 최소한 월 50만원은 필요하다. 월 50만원, 사업하다 보면 적게 보일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면서 고정적으로 수입이 생긴다면 월 50만원은 쉽게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수입이 거의 없다면 월 50만원도 부담이 되고 6개월 정도 헤매다 보면 그것이 300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직장인은 “설마”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무런 일이 없이, 아무런 소득이 없이 6개월을 보낸다는 것, 개인사업가에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일 년간 소득이 전혀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일 년간 소득이 없으니 월세와 접대비 등을 포함하여 천만 원이 그냥 사라지더라.


우리 집은 방이 3개다. 하나는 안방, 하나는 아들의 방, 하나는 딸의 방, 그리고 내 방은 베란다. 남자가 밖에 사무실을 두고 사업을 하더라도 집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을 하다 생긴 자료라든지 기타 서류 등 집에 보관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집에 가보니까 안방 문을 열자마자 남편의 큰 책상이 놓여있는 걸 보고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왜 하는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렇게 가족을 불편하게 해가면서 사업을 할 필요가 있는가? 안방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큰 자기 책상을 놔두고 자신이 가족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보여주기라고 하고 싶은 건가?


우리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2개 있다. 거실과 안방을 통하는 긴 베란다가 있고 아들의 방에 붙어 있는 작은 베란다가 있다. 나는 아들의 방에 붙어 있는 작은 베란다를 나의 방으로 쓰기로 하고 그 공간을 세팅했다. 물론 좀 좁기는 하지만 내가 그곳을 나의 공간으로 결정한 덕분에 집 전체가 넓어진 느낌이다. 사실 남자가 사업하면서 가지고 다니는 물품들이나 서류들은 복잡하여 집안에 펼쳐놓으면 집이 왠지 좀 복잡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것을 아들의 방 옆 베란다에 모두 모아 놓으니 베란다가 좁아서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내가 일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이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으니 집안 분위기는 훨씬 좋은 것 같다.


베란다, 아주 좋은 공간이다. 조금만 신경을 써서 꾸미면 아담한 자기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뭔가를 생각하면 집중이 잘 되고 자신이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멋진 가장이라는 자부심도 생긴다. 나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을 임대하기 전에는 베란다에 간판을 걸었었다. 회사 상호와 사훈을 출력 후 코팅하여 베란다 유리창에 붙여 놓고, 그 밑에 있는 책장 위에 가족사진을 올려놓은, 명실상부한 작은 사무실이었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제일 먼저 나의 사무실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 한 일을 머릿속으로 더듬곤 했다.


베란다에 간판을 걸어라는 말은 베란다를 잘 활용하라는 의미이다. 베란다도 좋은 공간이다. 일 하면서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직장인이 투잡으로 조그만 사업을 한다면 그 정도 공간이면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그것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나중에 진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전념을 하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하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월 50만원은 절약할 수 있다. 처음 사업하는 사람이 뭘 얼마나 팔아서 50만원을 벌 수 있을 것인가? 매출로 생각하면 적을지 모르지만 순수익으로 생각하면 50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식당에서 5천원짜리 점심 200그릇을 팔면 매출 100만원. 만약 수익률이 50퍼센트라고 하면 점심 200그릇을 팔아야 50만원이 남는다. 순수익 50만원은 굉장히 큰돈이다.


사업을 처음 하는 사람은 고정비용에 철저히 인색해야 한다. 사업 처음 하는 사람은 폼을 잡으면 안 된다. 내가 직장생활할 때 국내 거래처들을 방문해 보면 사장실이 넓고 화려하거나 사장 차가 고급차인 회사가 부도가 더 많이 나는 걸 직접 경험해 봤다. 그래서  사내 교육용 교재에도 거래처를 방문하여 사장실이 불필요하게 넓거나 화려하면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투잡하는 직장인, 직장을 그만두고 갓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복장이 허름하고 수수해야 다른 사람들과 쉽게 거래를 틀 수 있다. 아직 사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여 사무실을 별도로 내지 못하고 베란다에 간판을 걸었다고 하면 체면이 안 설 것 같지만, 오히려 건전한 사업가로 호평을 받을 수도 있다. 포장마차 사장이 외제차 타고 다니면 어느 손님이 그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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