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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Nov 20. 2019

남자의 변신도 무죄

나는 직장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했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을 해서도 당연히 무역업을 시작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독립한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하던 일을 독립한 후에도 그대로 한다. 품목도 그대로, 거래처도 그대로, 거래방식도 그대로. 당연하다. 새로운 일을 하면 첫 거래를 성사시키는 건 고사하고 본인이 일을 잘 몰라서 먼저 공부부터 해야 하는데, 직장에서 수년간 했던 일을 그대로 한다면 일단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 절약되니까 바로 영업 일선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독립 후 7년 정도 지나서 내 나이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었다. 남자는 일이 없으면 빨리 늙는다. 그래서 나는 수입에 상관없이 70세까지는 일을 하고 싶은데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70세까지 할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기업 회장들은 70세까지 일을 한다. 중소기업 대표들도 70세까지 일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영업을 하지는 않는다. 영업 일선에서 거래처 담당자를 만나서 상담하고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것은 부하직원들이 하고 그들은 그저 보고만 받을 뿐이다.


만약 내가 내 회사를 그렇게 키울 수가 있다면 그것도 좋은 그림이 될 것 같기는 하다. 지금은 비록 혼자서 영업도 하고 관리도 하고 회계도 하지만 앞으로 회사가 커지면 분야별로 직원을 고용하고 나는 제일 높은 자리에서 분야별로 직원들이 보고하는 것을 받고 최종 결정만 하면 될 것이다.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런 희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당연히 그런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자기 사업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당시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은 그렇게 클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는 만약 회사를 계속 운영한다면 70세가 되어도 지금처럼 영업을 해야 할 것이다. 70세 대표가 거래처를 방문하여 거래조건 협상하고 젊은 담당자와 커피 마시고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그림, 상상이 가는가? 아마 그런 그림은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자연히 사업이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주변에서 70세 남자가 일을 하는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일반음식점에서 카운트 보는 사람은 종종 보이지만 나는 그렇다고 70세에 그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부동산중개업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부동산중개업소는 나이가 많아도 문제없이 사업을 잘 영위하는 것 같았다. 우리 주변에 보면 나이가 많은 부동산중개업소 대표가 많다. 우연히 궁금하여 공부했던 것이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이라는 결과로 이어져서 나는 당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부동산 중개업소를 개업했다. 부동산 중개 업무를 하기 위해서 무역업무 중에서 시간 소모가 많은 일부 업무는 다른 업체한테 넘겼지만, 시간 소모가 없거나 밤에 일을 해도 괜찮은 업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투잡을 시작한 것이다.


경험이 전혀 없는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것이 처음에는 참으로 힘들었다. 주변 다른 중개업소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아침 10시에 출근하고 저녁 8시에 퇴근했는데, 아침 10시에 출근하는 것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지만 매일 저녁 8시에 퇴근하는 것은 참 힘들었다. 그리고 주말에 쉬지 못하니 가족들, 특히 한참 아빠가 필요한 성장기에 있는 애들 곁에 아빠가 있어 주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또한 저녁 약속이 있을 때는 나는 항상 늦게 참석할 수밖에 없으니 예전에 자주 만나던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부동산중개업이 내가 나이 70세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업무를 배워나갔고, 그 결과 3년 후에는 그 지역 중개업소 모임의 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업무 능력이 향상되었다.


무역업에 다시 매진하기 위해서 지금은 부동산중개업을 그만 뒀지만, 한 번 부동산중개업을 해봤으니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내가 내 사업을 잘 알고 변신했듯이 직장인도 자신을 잘 알고 필요하면 과감하게 변신할 필요가 있다.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자신을 잘 안다. 자신을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잘 생각해 보라. 과연 내가 임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그 자리는 결코 노력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이, 출신학교, 실력, 업무 역량, 주위 사람들의 평가 등 모든 요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봐야 한다. 마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제3자적인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평가해 봐야 한다. 어떤가?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변신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하는 ‘남자의 변신도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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