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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05. 2024

수험생 사회-이상한 스터디메이트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가장 중요할 시기에 인간관계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순 없다. 독하게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일주일도 안가서 고립감에 지쳐갔다.

‘후.. 아무한테라도 말걸고 싶다...말을 못해서 죽는 귀신이 되면 어떡하나,..’


혼자 웃긴 상상을 하다 키득키득 웃기라고 하면 독서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다. 말을 못하고 유일하게 스트레스 안받는 시간이 식사하는 시간이다 보니 폭식증이 생겨났고 160cm키에 살은 거의 60kg을 육박했다.


‘휴.. 외로워도 조금만 참자.. 너무 병들거같아.. 사람이 말은 하고 살아야지.. 그리고 외로워도 너무 외로워..’


고민 끝에 결국 포스트잍을 적어 도서관 게시판에 붙였다.


‘스터디 구함. 일주일에 두 번, 한번은 만나서 문제풀고 한번은 해답지 보면서 정리하는 시간 가져요. 010-XXXX-XXXX’

게시판에 포스트잍을 붙이고 나니 공부보다 핸드폰 소리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빨리 누가 연락 좀 와라.. 나 말 좀 하자... 다행히 하늘이 날 버린건 아닌지 그날 저녁 문자 한 통이 날라왔다.


‘스터디 같이 하고 싶어요. 내일 뵈어서 얘기 나누었으면 해요.’


다음날 오전, 보기로 한 카페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터디메이트를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스터디 글 올리신 분인가요?”


카페 문에서 총총 걸음으로 걸어온 분은 나보다 언니로 보이는 듯한 여자였다. 


‘언니인가 보구나. 이번엔 실수없이 잘 행동해야지.’


“안녕하세요. 전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3이에요.”


“반가워요. 난 염소정이에요. 나이는 28이구, 마침 저도 혼자 어떻게 준비할지 몰라서 막막했는데 이렇게 스터디로 좋은 분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여러 가지로 잘 부탁드릴게요.”


나를 구세주 보는양 초롱초롱 바라보는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여러 가지로 잘 부탁한다니..? 난 그냥 스터디를 구한 것 뿐인데.’


잠시 무거운 마음이 들었으나 나의 예민함으로 단정짓고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저도 처음 시험준비해보는거라 도움이 많이 되시진 못할거에요. 그럼 스터디 진도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뭐 급하게 얘기할거있나요? 아직 점심 안드셨죠? 먹으면서 얘기해요.”

“아.. 네.. 뭐 좋아하세요?”


점심먹는 내내 그녀는 입에 모터가 달린 양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진짜 수현씨 포스트잍 보자마자 오아시스 보는 기분이었어요. 어찌나 외로웠는지..”

“네 흐흐 수험생활이 많이 외롭죠.”

“나이먹고 취업도 못하고 자격증시험 공부해보려 하는데 주변에 사람은 없고.”

텐션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사람을 만나 당황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힘들지 않고 즐겁게 공부할수 있을거 같은 안도감이 앞서 들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즐거운 시간은 한동안이었다.


소정언니는 뭐든지 나와 함께하려고 들었다. 온 신경이 나한테 집중되어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하다 갑갑해서 라운지에서 공부하려 들면 잽싸게 자기 책을 들고 내가 공부하는 곳 옆으로 앉았다.


“언니, 무슨 일로..?”

“아.. 나도 공부안돼서 흐흐 수현씨 옆에 있으면 공부가 좀 잘 될 거 같아서. 근데 수현씨, 어제 내 문자에 답장 안했드라?”

“아 어제 공부한 내용좀 다시 보느라.. 늦게 문자하신거같던데 전 밤에 핸드폰 잘 안봐서요.”

“그래도 답장은 하지.”

“언니 저 밤에 핸드폰 잘 안본다니까요?”

“앞으론 잘 보고 답장해.”


소정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가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언니의 그런 모습이 진솔하다고 생각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언니는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서운한것도 많았다.


밥먹고 매점에서 간식 사고 있을 때,


“수현씨, 나 좀만 기다려줘. 공책을 좀 사야하는데 안보이네? 카운터한테 좀 물어볼게”

“네 언니”


짧게 대답하고 내가 공복시간에 먹을 사탕을 샀다. 소정언니는 공책이 떨어져 오후에 매점에 입점된다는 카운터의 말을 들었다. 


“에이 수현씨. 내가 물어보는 동안 공책 좀 찾아봐주지. 사탕사고 있었어?”

“아. 죄송해요. 카운터 언니가 더 잘 아실거같아서.”


언니는 가볍게 툭 털어놓는 서운함일수도 있지만 난 늘 미안하다 하면서 굳이 사과해야 할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애매한 상황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커피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수현씨 왔네?”

“네 좀 늦었어요.”

“커피사왔어? 수현씨랑 갔다 오려고 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바로 공부 시작하려구요.”

“커피 사오는게 뭐 시간 얼마나 잡아먹는다고 나한테 문자를 안줘?”

“...죄송해요. 다음엔 문자 드릴게요.”

“아니, 문자하지말고 다음엔 늦게 와도 나랑 카페에 같이 가.”

“바쁘면 같이 못갈수도 있잖아요.”

“수현씨만 바뻐? 그럼 앞으로 개인플레이 하자고.”


어이가 없었다. 순간 머리채 잡고 싸우고 싶었으나 시험이 코앞이라 큰 감정은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소정언니와 같은 장소에 있는게 숨이 막혀 위층 컴퓨터실로 올라가 인터넷강의를 들었다. 근데 아니나다를까, 내가 컴퓨터실에 있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소정언니는 위층으로 올라와 내 뒤에 앉았다.


‘와.. 진짜..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속으로 심한 욕을 하면서 인강을 듣는데 소정언니가 뒤에서 등을 툭 쳤다

.

“야, 나 공부하다 모르는거 있어.”

‘아니.. 사람 인강듣고 있는데 적어도 잠깐 시간있냐고 물어봐야 하는거 아닌가.’

“... 뭐가 궁금하신데요?”

“이거 말이야... 중얼중얼..”


언니가 궁금한게 내가 알리 만무했다. 공부에 대한 얘기는커녕 언니를 다시 지하 도서관으로 보내고 싶은 생각으로만 가득했으나 침착함을 잃지 않고 같이 알아봐가고 있었다. 소정언니는 이때다 싶어 시비를 놓치지 않았다.


“이거 저번에 수현씨도 알지 않았어? 되게 금방 까먹네?”

“글쎄요. 전 기억이 안나는데.”

“수현씨 이거 알았었어. 스터디 같이 했잖아 우리.”

‘그래요.. 언니는 기억력이 높아서 좋으시겠어요.’

“... 생각보다 어려운 게 많네요, 저희 시험내용이.”

“그르게.. 아 근데 너.. 되게 웃긴다?”

“네? ..왜요?”

“아니 아까.. 내가 너 컴퓨터 하는 뒤쪽에 앉으니까, 좀 싫어하는 눈빛으로 나 봤잖아.”

“.. 저 그런 적 없는데요?”

“지금 눈빛이랑 말투. 되게 기분나쁘네?”

“......”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또 다시 누군가와 싸워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머리채 한번 잡고 싸워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정언니도 굳어버린 내 표정을 인지했는지 당당하던 기세를 잠시 누그러뜨렸다.


“뭐.. 뭐? 얘기할거 있음 얘기해.”

“언니... 전 언니도 시험 잘 봤음 좋겠고 저도 그래요. 우리 사소한 거에 이러지 말고 같이 열심히 해서 이번 시험 잘 봐요. 점심 이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제가 살테니.”

“......”


소정언니는 내 행동에 안도했는지 한숨을 쉬고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수현씨. 나 할말 있는데 잠깐 화장실좀. 고해할게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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