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누그러뜨리려고 한 말은 역효과다.
분위기 누그러뜨리려고 한 말은 역효과다. 엄마가 캔을 단숨에 비운 뒤 찌그러뜨린다. 수틀에 끼워진 천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인다. 그 천에 바늘을 콕 찔러 긴장감을 해소하는 건 시어머니다.
- 언니! 시작부터 길 막히게 하지 말고 빨리 하셔.
시어머니의 말투에 놀란 엄마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 원래 화투판에서는 개 족보가 허용 되거든요.
시아버지의 보충설명에 엄마가 나를 쳐다본다. 훈수를 두는 척 엄마 패를 보며 말한다.
- 엄마. 빨리 검은 깨 먹어! 걔가 그래도 쌍 피야!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노력은 허사가 된다. 긴장된 공기의 밀도를 뚫고 엄마의 아득한 시선이 내게 쏠린다.
엄마는 모든 중심에 자신이 있어야 했다. 항상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것을 확인한 뒤에야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어려서 외할머니가 그렇게 키우고, 결혼 후에는 아빠가 받아주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만 완전한 자신감으로 빛나는 엄마를 너무 잘 아는 나는, 엄마의 화난 눈빛에는 낮게 엎드리고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대기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언제부터 균열이 일기 시작했을까. 어느 틈에 임계점이 있었고, 어떤 압력이 나를 짓눌러 온도를 달라지게 했을까. 한 번도 휘두르지 못한 예리한 칼날을 지니고 사느라 나는 또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지. 엄마가 가장 말랑말랑해진 순간, 그 칼을 꺼내 가차 없이 베어버릴 용기도 없으면서 꼭 붙들고 살아온 나는……
감정의 동요야 어쨌든 내 생각의 끝은 엄마다. 맘껏 휘두르지 못해 답답한 듯 숨을 짧게 끊어 내쉬는 엄마를 본 순간 내 갈등은 끝이 난다. 술이든 화투든 서툰 엄마는 애초부터 시부모님 상대가 안 된다. 판을 벌일 때마다 쓰리고, 피박, 광박을 쓴다. 쓰윽 주변을 둘러보던 엄마가 화풀이 상대를 찾는다. 화투를 치면서 어쮸쮸, 입소리를 내는 시어머니다.
- 사돈, 그 입소리 좀요!
같은 년 수를 살아온 만큼 수 없이 많은 날을 나란히 통과했을 두 사람이 순간 대치한다. 이런 순간, 모든 관계를 부인하고 싶다. 하지만 부인은 배반의 변형이라지. 부인한 순간 관계의 모든 토대가 헝클어지겠지. 그럼 어쩌지. 어쩔 수 없이 오래 묵은 명언에 기댄다. 빠져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과하는 것이다, 라는. 안 되는 애교작전이라도 부려 엄마를 위하려던 나는 선수를 빼앗긴다. 두 사람의 대치상황은 시어머니가 뻑으로 남편의 특피를 빼앗으며 끝이 난다.
- 어머머, 나 지금 오빨 호구로 봤네. 미안!
시어머니의 너스레에 남편이 헐렁하게 웃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는 점점 과감해진다. 쉼 없이 과자를 먹는 남편을 시시때때로 노려보는 가하면, 시어머니 화투에 훈수를 두는 시아버지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오랜 가족애로 똘똘 뭉친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운 듯 엄마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자신의 편임을 확인하려는 엄마의 애절함을 외면한다. 대가를 받는 건 남편이다.
- 사람이 욕심도 없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