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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 Oct 23. 2024

여름휴가_06

시골의 밤은 화려하다.

시골의 밤은 화려하다. 그악스럽게 우는 매미 울음소리도, 우렁차게 떨어지는 계곡 물소리도 음악인양 감미롭다. 물가의 젖은 나무 냄새 또한 코를 간지럽힌다. 시골이 주는 작은 평화다. 

-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아이를 재우고 내려온 남편이 간식을 꺼내다말고 화투를 장난스럽게 흔든다. 

- 아! 시간 죽이기 용…….

시아버지가 심심할 때 패나 뗄 생각으로 챙겨왔다는 화투는 곧 놀이기구로 탈바꿈한다. 화투를 섞고, 차에서 동전 통을 꺼내 오고, 엄마와 시어머니 옆에 맥주를 놓아주는 것으로 준비 끝.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화투의 룰을 정한다. 기본 약에 특피 네 개 따닥과 폭탄, 싹쓸이 때 피를 한 장 얹기로 한다. 

시아버지를 주축으로 자리를 잡는다. 세 사람이 판을 벌이는 고스톱의 멤버는 어떻게 구성되어도 난감하다. 시부모와 남편, 시부모와 나, 시부모와 엄마, 엄마랑 우리 부부. 어떻게 형성되든 불편하고 민망할 게 빤하다. 첫 판 주자는 엄마 남편 시어머니다. 자리 배정이 잘못 됐다는 건 한 판을 채 끝내기 전에 알게 된다. 엄마와 남편이 나란히 앉은 게 잘못이었을까. 남편이 앞서서 짝 맞는 걸 가져가자 엄마의 패가 밀리기 시작한다. 그로인해 엄마의 술 마시는 속도가 빨라진다. 남편이 쌍 피에 싹쓸이까지 하자 엄마가 발끈한다. 또 개념 없는 무논리가 발동한다.

- 자네, 삶의 목표가 뭔가? 앞으로의 계획이 뭔가, 이 말일세.

피 정리하느라 바쁜 남편은 표정이 뚱하다. 오히려 애가 타는 건 엄마인 듯 말이 빨라진다.

- 내가 묻잖는가. 응? 이러이러하게 가족을 건사하겠다, 이런 계획이 뭐냐고? 

흘깃, 엄마를 쳐다본 시아버지가 말한다. 엄마를 향한 원망인지, 피를 싹쓸이한 남편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다.

- 와, 너무하네. 초장부터.

잘 한다며 내놓고 응원하지 못한 내가 말한다. 어쩌면 엄마 들으라는 듯이.

- 오빠는요, 자기가 노력하는 거에 비해 얻는 게 많은 사주래요. 

- 누가 그랬는데?

묵묵히 화투에 몰두하던 시어머니가 표정이 환해지며 묻는다.

남편의 사주를 본 점쟁이가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 이런 사람을 만났대? 뉴스 보면 가끔 두두두 총을 난사한 뒤 자살하는 사람 있잖아? 그게 남편 같은 타입이야. 발동이 좀처럼 안 걸리는 대신 걸렸다하면 죽기 살기로 덤비는 거지. 그때가 언제냐면, 내 식구 건들었을 때야. 재밌는 건, 노력하는 거에 비해 얻는 게 많은 사주네. 나쁜 선택은 아니야. 빨리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 보이려고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이나 모델에 맞춰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 같은 걸 안하니 보기에는 답답해도 사람이 진득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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