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소란스럽다.
바깥은 소란스럽다. 여름특집 물놀이 생중계를 듣는 듯 생생하고 유혹적이다. 덩달아 아이의 몸이 들썩인다. 아이를 안아 주방 창을 통해 바깥을 보여준다. 흥분한 듯 들썩이는 아이의 몸에서 말랑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풀장은 허리에 튜브를 감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마치 같은 무리에 속한 듯, 한 아이의 돌진에 뒤로 길게 줄이 이어진다. 끝을 모른 채 무리가 이동하면 무조건 뒤를 따르는 소떼 같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와 남편이 ‘포켓몬 룰렛게임’을 시작한다. 룰렛 통에 여러 개의 구멍이 있고 그중 한 곳에 스틱을 꽂아 피카츄 인형이 튀어나오면 이기는 확률 게임이다. 순서를 정하려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아이는 보를 남편은 주먹을 낸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아이는 지는 걸 배우지 못한다. 그 일로 인해 남편과 자주 티격태격했다. 학교에 입학하면 저절로 알게 될 걸 지금이라도 누리게 하자는 남편의 생각과, 지금부터 정당하게 이기고 지는 걸 배우는 게 커서 덜 다칠 거라는 내 주장은 늘 대치한다.
아이가 룰렛 통에 스틱을 꽂는다. 두구두구두구 남편이 입소리를 낸다. 과한 효과음에 까르르 아이가 웃는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국수를 삶던 시어머니가 덩달아 웃는다. 국수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소화기관이 약해서 정작 자신은 먹지 못하는 국수를 삶는 시어머니의 양 볼이 발그레하다. 가족이 먹는다면 자신의 엉덩이 살로 스테이크라도 만들어 줄 정도로 헌신적인 시어머니를 보며 남편의 여유로운 성향은 그 사랑 안에서 생성된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국수는 먹음직스럽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지단과 얇게 썬 오이와 당근, 볶은 고기까지 얹어져 있다. 상을 차리는 동안 남편의 두구두구두구 소리는 이어진다. 아빠, 거기 꽂지 말고 한 칸 더 가서 꽂아. 왜? 거기 꽂으면 피카츄가 튀어 나올 거 같아. 그럼 이기는 거니까 좋은 거잖아. 싫어, 무서워. 아빠가 해. 저럴 때의 아이는 영락없는 다섯 살이다. 승부를 가리는 게임 중 아이의 틱은 더 심해진다. 아는지 모르는 지 남편은 게임에 열중하느라 아이의 틱은 뒷전이다. 곧 지나가리라 여기는 남편의 여유가 새삼 부럽다.
기척이 없는 엄마를 찾아 계단을 올라간다. 그새 얼굴에 시금치 팩을 올린 엄마는 파충류 같다. 기척에 놀란 엄마가 얼굴에서 팩을 떼어낸다. 민망한 듯 손이 잽싸다.
- 점심 준비, 다 됐다니? 사돈 손이 어찌나 느린지, 깜박 잠들 뻔 했네.
엄마의 특징, 개념 없는 무 논리다. 어쨌거나 팩을 한 엄마의 피부는 탱탱하고 매끈하다.
- 암튼, 엄마는 얼굴 반납해야 해!
평소 나를 향한 과한 집착에 지칠 때면 그 얼굴에 남자 친구도 없냐며 놀리곤 하던 걸 기억해 비아냥거리듯 말한다. 내 농담을 예쁘다는 말로 알아들은 엄마가 배시시 웃는다.
- 사돈께 맨 얼굴 보이는 거, 처음이잖니.
캐리어에서 꺼낸 통을 들고 계단을 내려간 엄마가 단호박을 내 국수에 고명처럼 얹어준다.
- 엄마. 음식에도 조합이라는 게 있어. 단호박이랑 국수는 좀 별로지 않아?
내 말에 엄마가 호들갑스러워진다.
- 얘가, 얘가, 이렇답니다. 몸에 좋은 게 뭔지, 어떤 사람이 제게 득이 되는 지, 암껏도 몰라요. 한 마디로 어리숙하답니다. 얘가 학교 다닐 땐 공부 하느라, 회사에서는 실험하느라 맨 앉아만 있잖아요. 제가 단호박을 챙겨 먹이니 말이지, 변비를 어쩔 겁니까?
변비에 좋다는 말 때문일까, 남편이 내 그릇을 흘끔거린다. 눈치껏 단 호박을 남편의 그릇에 덜어준다. 엄마의 질긴 시선은 애써 외면한다. 짜장 소스에 비빈 국수를 허겁지겁 먹은 아이가 출동! 소리치며 일어난다. 막 젓가락을 놓고 다리를 뻗던 남편이 주춤한다. 그러잖아도 나온 배가 더 볼록하다. 엄마의 시선이 남편의 배에 머물자 시아버지가 남편을 발로 툭 건드린다.
- 대장님, 아빠도 출동해야죠?
- 당연하지!
자신을 호명하지 않은 걸 핑계로 할비는, 할비는요, 시아버지가 징징대며 묻는다. 할비도 출동해! 아이의 말에 감사합니다, 대장님! 경례까지 붙이는 시아버지의 넉살에 모두들 한 바탕 웃는다.
홀로 남은 나는 귀를 찢는 매미소리를 음악 삼아 느리게 설거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