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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 Oct 23. 2024

여름휴가_05

아이스백 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아이스백 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풀장 테두리에 앉아 물장구를 치는 엄마를 향해 다가간다. 규칙적으로 왼발 오른 발 올렸다 내리는 동안 물방울이 무릎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튀어 오른다. 살금살금 다가가다 그대로 멈춰 선다. 그건 엄마의 시선 때문이다. 한 곳에 멈춰있는 엄마의 시선은 청명하고 맑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는 것도, 환호를 처음 배운 듯 소리치는 손자를 보는 것도, 아이를 태운 보트의 노를 젓느라 비 오듯 땀을 흘리는 사위를 보는 것도 아닌, 건장한 두 팔로 수영을 돕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 고정되어 있다. 그 눈빛이 어쩐지 망연하다.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 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양가가 함께 휴가를 떠나 온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작년 시어머니 회갑에 여행을 다녀온 게 발단이다. 같은 해 회갑이니 엄마도 함께 가는 건 어떠냐는 시부모님 말을 못들은 척 한 건, 비교적 사이가 좋은 두 분 사이에서 혹여 엄마의 외로움이 부각될 까 우려한 때문이었다. 아니, 그 사이에서 마음 불편할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3박 4일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의 얼굴은 수척했다. 내 안에 잠재된 죄의식 탓이었을까. 오래전 아빠가 떠난 즈음의 엄마 모습이 연상되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댁과의 도리도 자책을 이기지는 못했다. 같은 해 회갑이었던 엄마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자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었다. 아빠가 봤다면 무덤을 뛰쳐나올 일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에 나 자신보다 먼저 엄마를 챙기겠다고 약속했었다. 

어떤 한 시기를 통과한다는 건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터, 한 날 한 시에 같은 아픔을 통과했지만 엄마와 나는 달랐다. 내가 내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오로지 상실의 시간을 견뎌냈을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리적 시간은 같을지 몰라도 아빠와 함께한 구체성까지 더해져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날 이후, 명절이나 휴가 등의 행사에는 양가가 함께하자며 통보했다. 불편하다며 고개를 내젓던 엄마는 두 번씩 휴가 가는 거 힘들다는, 내 심정을 반영한 한 마디에 적의의 눈빛을 풀었다. 

그런 엄마가 지금 상대적 결핍 앞에 놓여있다.

- 아이, 차가워!

슬쩍 찬 맥주를 목에 댄다. 엄마가 아이처럼 소리친다. 휴가에는 역시 맥주지. 엄마의 표정이 금세 환해진 것에 안도해 낮게 한숨을 내쉰다. 곧이어 시어머니까지 합세, 건배한 두 분은 빠르게 벗이 된다. 역시 술은 위대하다. 

엄마! 풀장 한 가운데서 아이가 손을 흔든다. 열천의 한 낮. 작열하는 태양 아래 노를 젓느라 얼굴이 벌게진 남편도 노를 흔든다. 힘내! 양손을 흔들자 고른 이를 드러내며 남편이 웃는다. 문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울울창창한 녹색 기운과 함께 현란하고 눈부신 여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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