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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 Oct 23. 2024

여름휴가_02

일곱 살. 아이는 이제 막 허물을 벗어던진 생명체처럼 예고 없이 발칙했다

일곱 살. 아이는 이제 막 허물을 벗어던진 생명체처럼 예고 없이 발칙했다. 자잘한 사고를 치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눈망울로 개구지게 웃던 아이가 어느 날 콧소리를 내며 코를 들여 마셨다. 비염 약을 먹이고 몇 번 주의를 줬다. 눈을 이상하게 뜨기 전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느린 속도로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반 바퀴 돌린 뒤,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눈을 치뜨기 전까지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 내가 크게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병원에 와서야 알았다. 취학을 앞둔 아동에게 주로 나타나는 틱 장애라는 걸. 의사는 아이의 스트레스 요인을 생각해보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상황을 유추하는 척 의사의 눈길을 외면했다. 나는 그런 식의 지적을 몹시 싫어했다. 네 잘못을 네가 알렸다 식의 질책. 육하원칙을 써서 설명하면 쉽게 이해될 걸 스스로 자책과 반성을 오가며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그건 엄마가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의사는 진료카드에 적힌 아이의 생일을 지적했다. 순간 낯선 깨달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12월 20일에 태어난 아이는 또래보다 늦되게 성장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 지시사항을 알아듣지 못해 혼자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놀이 중에도 게임의 규칙을 알아듣지 못해 매번 뒤 쳐졌다. 원에서 보내는 동영상에서 그랬다. 귀엽다고 웃었을 뿐 아이의 표정 뒤에 감춰진 억울함은 알아채지 못했다.

7세에 사립 영어유치원에 보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운 것도 어학연수를 간 것도 아닌, 영어로 고생한 나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원어민 교사와의 수업에다 한글에 덧셈 뺄셈까지 따라가는 걸 부추기느라 정작 아이의 마음 같은 건 들여다보지 않았다. 의사는 실제 개월 수가 5세에 불과한데 7세의 일률적인 학습방식에 적응하느라 힘겨웠을 거라며 일단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라니. 그런 말보다 더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지금까지의 수업 방식을 거부하는 것도, 당장 유치원을 그만두는 것도 무리인 상황이었다. 그런 아이를 위한 보상이었다. 풀장이 딸린 펜션은. 

늦은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어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엄마가 묻는다. 

- 방 배정은 어떻게 한다니……

성별로 구분해서 자자는 내 말에 엄마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 어떻게 사돈이랑 한 방에서 자니. 그냥, 결혼 전으로 돌아가자.

그러니까 엄마의 생각은, 남편과 시부모님이 아래층, 나와 엄마는 이 층에서 자자는 말이다. 아이는 덤으로 내게 올 걸 계산에 넣은 듯하다.

- 이 층은 계단 때문에 불편하니까 어른들이 아래층에서 주무시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다 같은 부몬데 뭐 어때요?

남편이 계단을 올려다보며 참견을 한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의 시선이 냉랭해진다. 이런 일을 예상해서 방 세 개를 구하려했지만 성수기라 가격은 배로 껑충 뛰었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풀장이 있다는 이유로 펜션은 턱없이 비쌌다. 그럴 바에는 방 세 개짜리 펜션을 빌려 바닷가에서 놀자는 내 말에, 여행의 목적을 잊었냐며 고집을 꺾지 않는 남편의 말을 따른 결과였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한 가지에 꽂히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타입. 양가가 함께 가는 첫 휴가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지친 내가 양보하다보니 이런 사태가 생겼다. 

- 오빠! 왜 말장난하고 그래.

장난처럼 남편을 질책한다. 

- 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죄송합니다.

사과는 또 빠른 남편이다. 사실 남편은 등만 대면 잠드는 편이라 잠자리가 문제될 건 없다. 결국, 엄마 말대로 방 배정이 끝난다. 남편과 나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내 쪽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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