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니까?
- 참,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니까?
계단 앞에 선 엄마가 한숨을 내쉰다. 눈치 빠른 시아버지가 캐리어를 받아 든다.
- 사돈, 이리주세요. 계단이 가파르니까 조심하시구요.
- 그니까요. 넘어지면 큰일이죠. 쟤가 날 보살피겠다고 회사를 쉬게 될 테고, 그러면 아이 학원비며 생활비며 어떻게 감당할 겁니까.
엄마의 시선은 시아버지 너머의 남편을 향해 있다. 중소기업 대리인 남편보다 연구원인 내가 더 우위에 있다는, 월급봉투의 두께로 순위를 매긴 편협한 시선이다.
AI 계통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석사를 마쳤다. 곧바로 박사과정으로 이어질 걸 기대했던 엄마는 결혼하겠다는 내 말에 펄쩍 뛰었다. 온통 박사들로 구성된 직장에서 사윗감을 찾고 싶은 마음을 포기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도 박사를 마칠 걸 기대한 엄마는 허니문 베이비가 들어서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평소 길을 가다가도 아이만 보면 눈을 못 뗄 만큼 예뻐했지만 딸의 임신은 달랐다. 결국 상황을 받아들이긴 했어도 엄마의 잣대에 못 미친 남편을 보는 시선은 냉랭했다. 매 순간 섬뜩한 나와 달리 남편은 편안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선택한 남편의 성향이었다. 매사에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나와 달리 무심한 듯 느긋하고 작은 일에 행복해하는 타입.
물론 불편할 때도 있었다. 직원들과 밥을 먹거나 티타임 할 때, 남편을 박사로 호칭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다소 민망할 때도 있었다. 자기들끼리 실컷 남편 자랑을 늘어놓은 뒤, 내게도 물었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고.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박사도 교수도 의사도 변호사도 아닌 남편을 뭐라고 칭해야 좋을지 몰라 어물어물하다가 ‘우리 남편은’ 이라고 말할 때 괜히 얼굴이 붉어지곤 했으니까.
계단을 올라가던 엄마가 뒤를 돌아본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유튜브 영상을 보느라 돌아가는 상황에 무심한 남편이 못마땅한 듯 기어이 한마디 한다.
- 저, 저러다 바보상자로 들어가겠네. 여기까지 와서 뭘 하는 거야……
주춤, 앞서던 시아버지가 걸음을 멈춘다. 괜한 긴장감에 코를 쥐었다 놓는 건 나다. 식은땀이 난 콧잔등이 미끈하다.